등록 : 2009.02.27 19:46
수정 : 2009.02.27 19:46
사설
조금 넉넉하게 살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이루고자 한국에 왔던 우즈베키스탄의 나타샤(29·가명)가 이 땅에서 겪은 참담한 고통은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그는 휴대전화 조립공장에 취직하면 현지 월급의 다섯 배를 받을 수 있다는 말에 솔깃해 한국인과 위장결혼을 하고 이 땅에 들어왔다. 그러나 그를 기다린 곳은 휴대전화 조립 공장이 아니라 성매매 업소였다. 천신만고 끝에 업소를 탈출했다. 그러나 한국의 법은 그를 보호하는 대신 ‘공전자기록 등 불실기재’ 등의 혐의로 입건했다.
한국에서 4개월 동안 흘린 눈물이 자신이 일생 동안 흘린 눈물보다 많다는 그의 이야기는, 그만의 이야기로 그치지 않는다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 지금도 수많은 ‘나타샤’들이 여기저기서 피눈물을 쏟으면서도 자신의 피해 사실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성매매업에 외국 여성들이 들어온 것은 1990년대 중반 이후다. 연예인 비자를 이용해 인신매매 브로커들이 필리핀과 옛소련권 여성들을 불러들였다. 한때 기지촌 클럽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80~85%가 외국 여성일 정도로 넘쳐나면서 사회문제가 되자 정부는 2003년 옛소련권 여성들에게 연예인 비자 발급을 중지했다. 그러나 브로커들은 이번 사례처럼 위장결혼을 이용해 외국 여성을 불러들여 여전히 성업중이다.
결국, 인신매매 피해가 끊이지 않는 데는 브로커들이 판을 칠 여건을 만들어주는 우리의 법체계가 있다. 새로운 도구로 등장한 결혼이민 제도의 허점도 허점이지만 더 심각한 것은 피해자 보호제도다. 유엔은 외국 여성이 위장결혼 등 불법과정에 동의했다 하더라도 성매매 등을 강요당했다면 동의는 무효화하고 피해자로 보아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인신매매 피해자라도 불법입국 했으면 비자를 박탈하고 형사입건해 강제출국시킨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에 오느라 빚까지 진 여성들이 피해 사실을 밝히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이것이 인신매매 조직을 키우는 온상이 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러므로 제2·3의 ‘나타샤’를 막기 위해 인신매매 피해자보호법을 제정하는 일을 서둘러야 한다. 그리고 나타샤에겐 피해 구제 기간 동안 한국에 체류할 임시비자를 허용하는 게 마땅하다. 한국이 인신매매국이란 오명을 들어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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