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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5.15 21:02 수정 : 2005.05.15 21:02

시대적 소명을 안고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한겨레>가 창간 17돌을 맞았습니다. 세계언론 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운 ‘국민주 신문’으로 희망의 닻을 올렸을 때, 사회의 한 구석에는 이 여린 신문이 몇 달이나 버텨낼 수 있을까 하는 회의의 시선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주주와 독자와 국민의 뜨거운 성원이 있었기에 숱한 역경을 견뎌내며 항해를 지속할 수 있었고, 이제 시대상황과 사회적 여건과 미디어 환경의 변화 속에서 제2 창간에 나서려 합니다.

민주화를 넘어 화해와 통일로

17년 이란 세월이 흘렀어도 그날의 감격은 새록새록 되살아납니다. 1988년 5월1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에 있는 공장 동네 한 모퉁이에서 <한겨레신문> 창간호가 낡디낡은 윤전기에서 빠져나오던 순간 신문사 구성원뿐만 아니라 참언론의 탄생을 직접 보려고 모여든 사람들 사이에서 환성이 터져나왔습니다. ‘권력과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이란 기치를 내건 새 신문은 냉전과 독재체제 아래서 불가침의 성역으로 뻗어 있던 요소들을 하나씩 들어냈습니다. ‘북괴’와 ‘중공’이라는 냉전 용어 대신 ‘북한’과 ‘중국’을 지면에 정착시켰고, 정보기관의 민간인 사찰, 노동현장의 살벌한 탄압과 블랙리스트, 의문사와 인권유린 등 권위주의 시대의 암흑 실태를 샅샅이 밝혔습니다.

한겨레의 역사는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분명히 사회의 전반적 민주화와 궤를 같이해 왔습니다. 동시에 민주화의 저변이 넓어질수록 우리의 설자리가 역설적으로 좁아지는 상황에 마주치게 됐습니다. 시련은 세 가지 방향에서 왔습니다. 첫째는 권위주의 체제의 해체에 따른 성역의 축소입니다. 우리가 외롭게 투쟁하며 사실상 독점을 해오던 담론의 무대는 이제 수많은 매체의 공유로 바뀌었습니다. 둘째는 ‘민주 대 반민주’ 구도가 무너지면서 사회 구성원들의 관심이 엄청나게 다양화·다분화됐습니다. 독재에 저항했던 민주세력의 도덕적 우위는 국민의 정부 이래 무게가 떨어지기 시작했고, 사회적 현안에 대한 집단적 관심은 내면화·분절화하는 풍조로 바뀌었습니다. 셋째는 언론권력의 이상비대 현상으로 신문시장의 약탈적 행태가 극에 달했습니다. 물량위주의 오프라인 판매경쟁에다 뉴미디어의 다변화가 더해진 매체환경의 격변 속에서 한겨레는 체계적 전략을 세우지 못하고 헤맸습니다.

창간 17돌을 맞아 우리는 시대의 이런 도전에 맞서 얼마나 뼈아픈 혁신을 해 왔는지 자문해 봅니다. 과거의 관행과 타성에 젖어 결과적으로 편가르기에 안주했던 것은 아닌지, 경제·사회적 약자를 배려한다는 생각에서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는 데 소홀했던 것은 아닌지, 열린언론을 표방하면서도 독자를 포함한 시민사회와 대등한 관계로 의사소통을 하기보다는 일방통행식 뉴스 공급을 했던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고급 진보, 복합매체로 거듭날 것

우리는 극도로 불리한 여건에서 한정된 자원으로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는 변명 뒤에 숨지 않겠습니다. 스스로 옷깃을 여미면서 제2 창간의 깃발을 다시 드는 것은 17년 전 내건 ‘권력과 자본으로부터의 독립’과 ‘민중에게 자유를, 민족에게 통일을’이란 구호가 여전히 의미가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한겨레가 그동안 민주화와 민족의 화해를 위해 일관된 노력을 기울여 상당한 성과를 올린 것은 사실이지만, 해야 할 일은 아직도 쌓여 있습니다.

우리는 복합미디어로서, 신뢰할 수 있는 고급 진보매체로서 네 가지의 지향점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통일시대를 대비하는 매체입니다. 최근의 핵위기 고조에서 보듯이 한반도는 언제 전화에 휘말릴지 모르는 위기상황에 있습니다. 당장은 국내외 수구세력들의 발호를 막아서 무력 충돌의 길을 봉쇄하고 평화 정착 기반을 확고히 다지는 일이 시급합니다. 평화적 해결 움직임에 추진력이 붙으면 통일도 그리 멀지 않은 장래에 가시권에 들어서리라고 봅니다.

둘째는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을 주도하는 매체입니다. 한반도의 평화는 동북아의 화해·협력과 직결될 수밖에 없으나, 역사논쟁, 과거사 청산 논란에서 나타나듯이 진정한 화해의 길은 멀고도 멉니다. 우리는 이 지역에서 편협한 민족주의에서 벗어나 상생의 길을 모색하는 시민들의 움직임을 밀고 나가겠습니다.

독자와 더불어 호흡하는 신문이 될 터

셋째는 민주화의 열매를 확대시키면서 민주화 이후 시대를 대비하는 매체입니다. 민주화가 많이 진전됐다고는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계층, 소수집단은 곳곳에 있습니다. 초일류 기업의 활약상이 부각되고 있는 이면에 벼랑에 내몰린 노숙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참혹상이 엄연히 존재합니다. 우리는 계층 사이, 집단 사이, 지역 사이의 갈등구조를 슬기롭게 푸는 방안을 찾고 공동체적 삶을 이루는 데 앞장서겠습니다.

넷째는 독자들과 소통하며 깊이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매체입니다. 독자들과 쌍방향으로 교신할 수 있는 제도를 순차적으로 도입하고 정보의 홍수에 빠진 독자들에게 나침반 구실을 하겠습니다.

우리의 다짐이 실현될 수 있도록 주주, 독자와 깨어 있는 시민들의 많은 성원과 질책이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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