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3.02 19:52
수정 : 2009.03.02 19:52
사설
국회가 막판 파국을 면했다. 신문법 등 15개 법안을 직권으로 상정하기 직전에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최대 쟁점인 미디어 관련법에 대해 사회적 합의기구의 논의를 거쳐 100일 이내에 표결로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여야가 충돌을 피한 것은 다행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밀어붙이기 행태와 김형오 국회의장의 무원칙한 행보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한나라당은 지난달 25일 미디어 관련법을 국회 문방위에서 날치기 상정을 할 때만 해도 “이번 국회에서 처리하자는 게 아니라 논의만 시작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상임위 상정이 유효한지에 대한 논란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이번 회기 안에 미디어법 등을 처리할 것을 김형오 국회의장에게 요구했다. 여당이 국회 본청 홀을 점거하는 등 국회 질서 파괴에 앞장서기도 했다. 부끄러운 일이다.
김 의장은 그동안 중립적인 위치를 지키려 애쓰는 등 비교적 합리적인 처신을 해 왔지만, 이번에는 확실하게 여당 편을 들었을 뿐 아니라 스스로 강조했던 대화 해결 원칙조차 뒤집었다. 그는 그제까지만 해도 여야 협상을 중재하면서 미디어법은 6월 국회에서 처리하자는 잠정 합의안을 내놓았다. 미디어법은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의장의 중재안은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었다.
한나라당의 거부로 잠정합의가 깨지자, 김 의장은 느닷없이 미디어법을 직권상정 목록에 올렸다. 숙성은커녕 국회에서 논의 한번 하지 않은 쟁점법안을 직권으로 상정하겠다는 게 말이 되는가. 게다가 그는 통신비밀법과 출총제 법안 등 다른 쟁점 사안도 목록에 올렸다. 청와대와 여당의 요구를 완전히 수용한 것이다. 김 의장의 압박에 밀려 민주당이 미디어법 표결 처리시한을 100일로 약속함으로써 파국은 면하게 됐지만, 이런 의장의 태도는 대단히 무원칙한 것이었다. 의장이 이런 행보를 계속한다면 앞으로 어느 야당이 김 의장의 말을 믿고 그의 중재를 받아들이겠는가.
미디어법을 사회적 논의기구에서 다루기로 한 만큼 방송계 등 사회 각계가 참여해서 원점에서 새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한나라당이 내놓은 재벌의 지상파 참여 배제가 가이드라인이 될 수는 없다. 조·중·동의 방송 참여도 결코 허용해선 안 될 것이다. 굳이 시한에 구애받아서도 안 된다. 제대로 된 논의를 하기에는 100일이란 기간은 너무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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