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3.03 19:32
수정 : 2009.03.03 19:32
사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그제 방송법 등 네 가지 언론 관계 법안을 ‘사회적 논의기구’에서 논의한 뒤 6월 국회에서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합의문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벌써 논의기구의 위상에 관한 이견이 터져나오는 등 앞날이 험난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는 어제 한 라디오와의 회견에서 “사회적 논의기구라고 이름 붙였지만 의결기구가 아니라 자문기구”라면서, “기구의 의견은 어디까지나 참고 의견”이며 “(기구와) 의견이 달라도 국회에서 법안을 심의·처리하는 데 지장이 없다”고 주장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위원회의 한나라당 간사인 나경원 의원 역시 사회적 논의기구는 자문만 하면 된다고 못을 박았다.
박 대표 등의 이런 발언은 온당치 않다. 쟁점법안에 대한 사회적 논의기구의 필요성이 제기된 첫째 원인은 한나라당이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는 언론 관련 법안을 일자리 창출 법안으로 호도하며 밀어붙인 데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스스로 이 주장이 허구임을 인정했다. 재벌의 투자로 미디어 산업의 경쟁력을 키움으로써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고 역설하던 여당이 갑자기 지상파 방송에 대한 재벌 참여를 0%까지 줄일 수 있다고 물러선 것이다. 그러니 국민들로선 쟁점법안을 그토록 밀어붙인 게 이미 여론시장을 독과점하고 있는 조·중·동에 방송을 헌납해 여론시장을 장악하려는 뜻이 아닌가 의심할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이 진정 언론장악 의도가 없다면,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사회적 논의기구에 새로운 해법을 도출해 낼 수 있는 위상과 권한을 주는 게 마땅하다. 그러지 않고 이를 단순히 요식행위로 취급한 채, 결국에 가서는 의석수를 앞세워 힘으로 문제법안을 밀어붙일 생각이라면, 누가 그 들러리를 서려 하겠는가?
이번 합의안은 사회적 논의 기간을 100일로 한정하는 등 한계가 많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여·야와 관련 당사자들이 진정성을 갖고 임한다면, 우리 사회의 다양한 갈등을 해결해 내는 새로운 본보기를 만들 소중한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러자면 실질적 논의가 가능한 인적 구성과 합의도출 절차 및 회의 내용에 대한 투명한 공개, 그리고 기구 의견 존중 등의 원칙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 관련 당사자들, 그 가운데서도 가장 큰 힘을 갖고 있는 한나라당이 진지한 태도로 임하는 게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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