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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3.05 22:09 수정 : 2009.03.05 22:09

사설

지난해 촛불집회 사건에서 법원 고위층이 재판 진행을 독촉하는 등 압력을 넣은 사실이 물증으로 확인됐다. 촛불사건 몰아주기 배당에 이은 노골적인 재판 개입이다. 수십 년 전 박정희·전두환 정권 때나 볼 수 있었던 얼토당토않은 일이니, 사법부의 독립과 권위를 위태롭게 하는 중대 사태다.

지금은 대법관인 신영철 당시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이 담당판사들에게 보낸 전자우편의 내용은 놀랍기 그지없다. 신 당시 원장은 10월14일치 ‘대법원장 업무보고’란 제목의 전자우편에서 그 닷새 전 한 판사의 야간집회 금지조항에 대한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거론하면서, “나머지 사건은 통상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에둘렀지만, 뜻하는 바는 분명하다. 위헌 제청이 되면 관련 사건들의 재판을 헌법재판소의 결정 뒤로 미루는 관례를 무시하고 재판을 빨리 진행해 선고하라는 요구다.

무엇을 위해 그렇게 무리한 짓을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가 전자우편에서 밝힌 대로 “사회적으로 소모적 논쟁을 피해야 한다”는 게 이유라면, 촛불집회 참가자 기소의 부당성이 사회문제로 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일 터이다. 서둘러 재판을 진행하라는 요구도, 구속과 처벌을 통해 촛불집회를 틀어막으려는 당시 정권의 정치적 필요에 맞춰야 한다는 말로 들린다. 사법부가 취할 태도는 결코 아니다.

소속 판사에 대한 인사평가 권한을 지닌 법원장이 정치적으로 편향된 이런 태도를 판사들에게 강요하며 재판에 간섭한 것은, 법원의 독립성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일이다.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해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는 헌법 규정을 정면으로 어긴 것이기도 하다. 그런 일을 저지른 이를 대법원에 그대로 둘 순 없다. 신 당시 원장은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

이런 요구가 신 당시 원장 혼자의 뜻이었는지도 따져야 한다. 그는 전자우편에서 “(대법원장이) 대체로 내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들었다”며 자신이 이용훈 대법원장의 뜻을 전한 양 내비쳤다. 사실이라면 인사권을 가진 대법원장이 법원장을 통해 사실상 재판을 좌우하는 명령을 한 게 된다. 그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또, 그런 일이 정부 쪽의 주문에 따른 것이었다면, 법원 스스로 독립을 포기한 것이니 더 큰 문제가 된다. 진상 규명에 한치의 숨김도 없어야 할 이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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