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3.06 19:48
수정 : 2009.03.06 19:48
사설
촛불집회 사건 재판에 법원 고위층이 간섭했다는 명백한 증거가 나왔는데도, 의혹의 당사자들이 사리에 맞지 않는 주장과 변명을 계속하고 있다. 지난해 서울중앙지방법원장 때 촛불사건 담당 판사들에게 여러 통의 압력성 전자우편을 보낸 신영철 대법관은 그게 무슨 잘못이냐고 강변했다. 이용훈 대법원장도 “그걸 갖고 판사들이 압박을 받아서야 되겠느냐”고 말했다. 사람을 때려놓고 그 정도로 뭘 아프냐고 말하는 꼴이다.
문제된 전자우편은 위헌법률심판 제청에도 불구하고 관련 사건의 재판을 계속해 선고를 서두르라고 재촉하는 내용이다. 판사들은 유죄 선고를 하라는 취지로 이해했다고 한다. 판사 평가권을 지닌 법원장이 인사권자인 대법원장의 뜻이라며 그런 뜻을 전자우편으로 밝혀 왔으니, 압박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도리가 없다. 실제로 그 뒤 서둘러 선고가 내려진 흔적도 여럿이다. 그런데도 이를 재판 간섭이 아니라고 우긴다면, 위기에 빠진 사법부의 독립성은 외면한 채 자신에게 닥친 곤경만 모면하려는 모습으로 비칠 뿐이다.
이 대법원장 등은 이번 일이 사법행정 지휘라고 주장하려는 듯하다. 그러나 위헌 제청된 문제를 중요 쟁점으로 보고 재판을 유보할지, 또는 심리를 어느 정도 할지 등은 재판의 본질에 관한 문제로 개별 재판부가 결정할 일이다. 여기에 이래라저래라하는 것은 재판 간섭이지, 사법행정 지휘라고 볼 수 없다. 사법행정이 법관의 독립적 재판에 우선할 일도 아니다.
이 대법원장은 전자우편의 내용이 자신이 말한 원칙과 일맥상통한다고 밝혔다. 자신의 뜻이라고 시인한 셈이다. 그가 이를 법원장을 통해 일선 판사들에게 전하려 했다면, 인사권자라는 지위를 이용해 재판을 좌우하는 명령을 한 것이다. 엄밀한 진상규명을 통해 그 책임을 따지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도 그는 “대법원장을 왜 조사하느냐”고 말했다. 스스로 의혹의 당사자인 사건 조사에 미리 한계를 정하려는 부당한 간섭이다.
이번 일은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뿌리부터 흔드는 사건이다. 일선 판사들의 인식이나 국민의 걱정과 동떨어진 방향으로 사건을 흐지부지하려 한다면 지금보다 더한 혼란이 일어난다. 법원은 지금 벼랑끝에 서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대법원장을 포함한 모든 관련자에 대한 철저한 조사는 불가피하다. 필요하다면 외부 진상조사도 마다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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