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3.06 19:49
수정 : 2009.03.06 19:49
사설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가 그제 한-미 키리졸브 합동군사연습을 이유로 동해쪽 북한 영공 주변에서 한국 민항기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우리 국적 항공사들은 북쪽 영공 통과 항로를 긴급하게 바꿨다. 그간 지속적으로 나빠진 남북관계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모습이다.
민항기에 대한 북쪽 위협은 국제규범과 인도적 원칙에 어긋난다. 또한, 남북이 1997년 서명한 양해각서를 부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각서는 동해 영공 통과 때 승객·승무원·화물의 안전을 보장해 왔다. 만약 이번 성명 내용과 같은 일이 실행에 옮겨진다면 남북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북쪽이 바라는 미국과의 관계 개선 가능성도 희박해질 것이다. 북쪽은 자신에게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이번 위협을 거둬들이는 것이 옳다.
이번 일은 남북관계 현실과 밀접하게 얽혀 있다. 이번 성명은 남북 사이 모든 군사 합의 무효화를 선언한 지난 1월 말 조평통 성명의 연장선에 있다. 북쪽이 남쪽 정부의 대북 무시정책 기조에 맞서 대응 수위를 높인 것이다. 성명이 위협 대상을 ‘군사연습 기간 남쪽 민항기’로 특정한 것이 그런 의도를 잘 보여준다. 북쪽이 인공위성이라고 주장하는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가 이번 조처와 직접 연관된 것 같지는 않지만, 군사연습 기간에 동해쪽으로 단거리 미사일을 쏠 가능성은 없지 않다.
북쪽이 키리졸브 군사연습을 예민하게 여기는 것은 일정 부분 이해할 만하다. 한반도 유사시에 대비한다지만 사상 최대 규모인 2만6천여 미군과 핵추진 항공모함 등이 동원되는데다 기간도 예년의 두 배 가까운 열이틀(9~20일)로 늘었기 때문이다. 이런 연습이 군사중심주의로 치달아 한반도 긴장을 격화시킨다면 하지 않으니만 못하다. 대북 군사 압박은 평화에 이르는 주된 수단이 되지 못하는 것은 물론, 남북관계를 대체할 수도 없다.
정부는 남북관계 악화를 방치한 채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한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아직 심각한 충돌이 없으므로 괜찮다는 태도다. 이런 분위기에서 냉전시대를 연상시키는 적대적 남북관계가 굳어져 가고 있다. 정부는 사태가 더 나빠지기 전에 왜 여기까지 왔는지를 되돌아보고 전기를 찾아야 한다. 지금처럼 북쪽에 책임을 돌리는 일에 치중하는 것은 그릇된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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