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3.09 19:37
수정 : 2009.03.09 19:37
사설
6박7일 외국 순방을 마치고 돌아온 이명박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을 듣고, 아마 적잖은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여러 나라를 둘러보면서 시야를 넓혔을 법도 한데, 모든 상황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는 태도는 어쩜 그리 변함이 없을까?’ 이 대통령의 순방 성과를 깎아내릴 생각은 없다. 다만, 국내 상황을 바라보는 그의 독선적 시각이 우리 사회 갈등을 더 심하게 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든다.
이 대통령은 라디오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순방기간 내내 부러웠던 건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노력에 여야가 따로 없는 모습이었다. … (우리나라엔) 안타깝게도 아직 이곳저곳에서 소수이기는 하지만 정부가 하는 일을 무조건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안타깝다.”
정작 안타까운 건 국민이다. 경제위기를 극복하자며 힘을 합치자는 데 누가 반대할까. 문제는 그런 분위기를 만들려 하지는 않고, 오히려 이념 갈등을 부추기고 정치 투쟁을 극한으로 내모는 집권세력의 행태에 있다. 지난 연말부터 여야간 첨예한 대결 마당으로 변한 국회를 한번 돌아보자. 경제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법안들을 밀어붙이려다 극심한 갈등과 파행을 몰고온 게 정부·여당이다. 경제살리기 법안으로 포장하다가 나중엔 그것마저 내던져 버린 방송법은 대표적 예일 뿐이다. 현정권이 집권한 뒤 단 한 번이라도 야당이나 비판적 시각을 가진 시민사회 단체들에 먼저 양보하고 손을 내민 적이 있는지 이 대통령은 되새겨 보길 바란다. <한국방송>(KBS)과 <와이티엔>(YTN)을 장악한 것으론 모자라, 시민사회 단체들이 제작에 참여하는 작디작은 <시민방송>(RTV)까지 고사시키려 하는 게 이 정권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왜 위기 극복을 위해 협력하지 못하는가’라고 말하면, 감동하는 국민이 있을 리 없다. 이 대통령은 오스트레일리아 야당대표가 환영사를 해 준 데 감격하기 이전에, 과연 오스트레일리아 정부가 지금 시기에 시민권을 억누르는 이념 법안·정책을 밀어붙이려 애쓰고 있는지부터 먼저 살펴야 할 것이다. 온국민의 단합이 중요하고 절실하다는 걸 부인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 시작은 대통령 자신이 되어야 한다. 손으로는 숱한 갈등의 씨앗을 뿌리면서 입으로만 초당적 협력을 외쳐선 국민의 힘을 한 데 모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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