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3.10 21:19
수정 : 2009.03.10 21:19
사설
촛불집회 사건에 대한 법원 고위층의 재판 간섭이 잦았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검찰이 적용한 전기통신기본법에 대해 위헌심판을 받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던 한 판사는, 신영철 당시 서울중앙지방법원장(현 대법관)의 말에 압력을 느껴 위헌법률 심판을 제청해 달라는 피고인의 신청을 기각했다고 한다. 신 대법관은 또 촛불사건 참가자의 보석을 허가한 판사를 여러 차례 불러 사실상 압력을 행사했다고 한다.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에 대해 해당 판사에게 전화를 걸어 선고 연기를 주문했다는 의혹까지 있다. 한결같이 법과 양심에 따라서만 재판해야 할 법관의 독립성을 침해하는 일들로서, 재판 간섭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한나라당과 청와대는 이를 ‘사법행정 행위’라고 우기고 있다. 현행법에 비추어 봐도 그런 해석은 불가능하다. 일본과 독일 등 다른 나라에서도 사법행정은 법관의 독립성이 침해되지 않는 한도에서 인적·물적 지원을 하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특히 신 대법관에 대한 비판과 사실규명 요구까지 ‘반정부·불순세력의 트집잡기’로 매도하고 있다. 이번 사건의 책임이 재판 간섭을 한 신 대법관이 아니라 의혹을 제기한 일선 판사들에게 있는 양 덮어씌우려는 듯하다. ‘용산 철거민 참사’ 때처럼 가해자와 피해자를 뒤바꾸려는 시도로 보인다. 이런 억지 주장은 바로 며칠 전 <조선일보>에서 나타났다. 억지 논리로 앵무새마냥 있는 사실을 아니라고 우기는 모습이 꼴사납다.
이번 일의 진상은 너무나 명백하다. 판사들에 대한 인사평정권을 지닌 법원장이 여러 차례 전자우편이나 직접 접촉을 통해 재판을 재촉하고 위헌심판 신청을 받아들이지 말라는 등 재판의 본질적 내용과 절차를 간섭한 것으로, 압력이고 재판권 침해다. 국민으로선 ‘재판을 판사들이 하는 게 아니라 위에서 다 지시해서 하는구나!’ 여길 것이니, 독립성이 생명인 사법부로선 절체절명의 위기다.
법원으로선 그런 불신을 씻는 게 무엇보다 시급하다. 수뇌부도 외부의 정치적 지원 따위에 연연하기보다 결단을 서둘러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건 논란의 장본인인 신 대법관의 사퇴는 너무나 당연하다. 여기서 그칠 일이 아니기도 하다. 사법부는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근본적 성찰과 함께 법관 인사제도 등에 대한 전면적 개혁에 나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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