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3.10 21:20
수정 : 2009.03.10 21:20
사설
론 커크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 지명자가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대해 “현상태로는 수용할 수 없다”고 어제 상원 인준 청문회에서 밝혔다. 그는 “많은 미국인이 무역 때문에 일자리를 잃고 있다고 우려하는 것을 단순히 보호무역 주의자로 치부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말했다. 국제관례에 어긋나지만 경제위기 상황을 반영해 협정 전반을 문제 삼은 듯하다.
따라서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어떤 형식으로든 수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되면 우리 정부의 조기 비준론은 근거가 약해질 수밖에 없다. 정부·여당은 우리가 먼저 비준을 해야 미국 쪽에 비준안이 통과되도록 압력을 가할 수 있다는 논리로 조기비준을 주장해 왔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위해 지난해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국민의 건강과 축산농가의 생존권을 내주고 쇠고기 시장을 개방하기도 했다. 그러나 민주당이 주도하는 미국 행정부나 의회가 우리 정부의 뜻대로 굴러갈 가능성은 희박하다. 따라서 우리는 조기 비준론에 매달리지 말고 이 협정을 전면 재검토하는 게 현실적이고 국익을 살리는 길이다.
우리 쪽에 협정이 유리하게 됐기 때문에 미국이 협정 내용을 문제 삼는다는 것은 더더욱 말이 안 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처음부터 미국에 끌려다닌 불평등 협정이었다. 무엇보다 우리 내부의 영향평가와 의견수렴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 미국의 태도 선회는 스크린 쿼터 등 4대 선결조건을 비롯해 많은 것을 얻어냈지만 그것으로 부족해 더 채우겠다는 것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맺어질 경우 정부가 내세우는 것 가운데 교역 증대 효과는 있겠지만 투자 증대와 생산성 향상 효과는 크게 부풀려진 것으로 드러났다. 농업과 제약은 거의 무방비 상태로 개방돼 산업이 초토화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거기에다가 미국이 ‘투자자-정부 제소권’을 들어 정책결정 과정에 일일이 개입하게 된다면 우리 정부 입지는 갈수록 좁아질 수밖에 없다.
우리 경제의 최대 현안은 고용 없는 성장과 사회 양극화 심화인데,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이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다. 지나친 개방의 대가를 지금 톡톡히 치르고 있으면서 개방만이 살길이라고 하는 것은 어리석을 뿐 아니라 위험하기까지 하다. 투자자-정부 제소권 등 독소조항을 비롯해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아야 한다.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