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3.11 19:31
수정 : 2009.03.11 19:31
사설
어제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가 기여입학제, 고교등급제, 본고사 금지 등 이른바 ‘3불’ 조항을 없앤, 대입전형 기본사항 개편방안을 발표했다. 정부로부터 대입전형 관할권을 넘겨받은 뒤 실무위원장이 연구한 결과를 밝힌 것이니, 대교협 집행부의 의견이나 다름없다. 주요 대학의 숙원사업이었던 3불 정책 무력화가 대교협을 통해 본격화하고 있는 셈이다.
파장이 커지자 대교협은 개편안과 3불 정책 폐기와는 무관하다고 발뺌했다. 하지만, 명시되어 있던 금지조항을 통째로 들어냈으니 무관함을 입증할 도리가 없다. 게다가 고교등급제로 직행할 대학별 고교 종합평가 조항을 신설했고, 지식을 묻거나 정답을 요구하는 문제 풀이형 논술도 허용하도록 했다. 개편안은 ‘3불’ 가운데 ‘2불’은 폐기한 것이다.
사실 대입 자율화 이후 대교협이 한 일이라곤 3불 정책 무력화밖에 없다. 사립대학총장협의회 회장 때부터 3불 정책 폐지를 줄곧 주장해 왔던 손병두 회장은 그동안 2012년부터 고교등급제와 본고사 금지는 사라질 것이라고 거듭 단언했다. 그런 그의 생각은 지난해 입시에도 이미 반영돼, 고려대는 사실상 고교등급제를 적용했고, 주요 사립대는 본고사형 논술을 시행했다. 사회 문제화했던 고려대 등급제 의혹엔 면죄부를 줬다.
물론 3불 정책이 최선일 순 없다. 그러나 지금처럼 대학이 사회적 책무나 교육의 공공성을 외면하는 현실에선 이런 정책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다. 2불 폐지 예고만으로도 공교육은 죽어가고 가계는 사교육비에 허덕인다. 대학이 변하기 전엔 이를 폐지해선 안 된다. 대교협도 엊그제 정부 및 교원단체와 함께 ‘공교육 활성화 선언선포식’을 하고 창의성 잠재력 위주 선발, 교육격차 해소 등을 다짐했던 터였다.
정부는 뒤늦게 3불 폐지는 시기상조임을 인정했다. 교과부 장관은 “특목고 위주로 뽑는 것이 자율화라면 차라리 안 하는 게 낫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정부의 책임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교육현장을 시장으로, 학교를 기업으로, 학생을 상품으로 여기는 천박한 교육 장사꾼들에게, 정책 권한을 온전히 넘긴 건 이 정부였다. 이제 대교협은 그 정체와 탐욕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정부는 고삐 풀린 대학이 공교육과 가계를 파탄에 빠뜨리는 것을 막아야 한다. 정책 권한을 회수하거나 ‘3불’을 입법화하는 것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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