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3.12 20:40
수정 : 2009.03.12 20:40
사설
노동부가 오늘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용기간을 현행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는 내용의 비정규직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한다. 다른 ‘엠비(MB) 법안’들처럼, 4월 임시국회에서 비정규직법 개정안을 밀어붙이겠다는 뜻이다. 대통령은 ‘경제위기에 서로 협력하는 다른 나라 모습이 부럽다’고 말하는데, 일선 부처에선 아무런 타협 노력 없이 덜컥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나서니, ‘말 따로 행동 따로’가 이 정부의 특징이란 걸 새삼 느낄 뿐이다.
비정규직법 개정은 애초 2월 임시국회에서 추진하려다, 한나라당과 한국노총의 반발로 노동부가 물러섰던 사안이다. 그때 이미 법 개정 논리의 허구와 문제점이 충분히 제기됐다. 이영희 노동부 장관이 내세웠던, “올 7월이면 사용기간 2년이 되는 비정규직 노동자 100만명이 해고의 갈림길에 선다”는 ‘7월 고용대란설’은 정부 스스로 말이 안 된다는 걸 깨닫고 거둬들였다. 그런데도 이번에 어떤 그럴듯한 설명도 없이, 집권세력 내부에서도 반발이 큰 법안을 예고하겠다고 하니 이해하기 어렵다.
더 큰 문제는 당사자인 노동계와 아무런 사전 협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난달 말 정부는 노사와 정부, 시민사회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손을 맞잡자면서 ‘노·사·민·정 대타협 합의’를 주도했다. 대타협이 실질 성과로 이어지려면, 각 주체가 서로 신뢰하며 현안을 대화를 통해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합의문 발표 이틀 뒤 전경련이 대졸 신입사원 초임 삭감계획을 일방적으로 발표하면서 신뢰는 이미 한차례 커다란 손상을 입었다. 이번엔 각 주체의 약속 이행을 지켜보며 대립을 조정해야 할 정부가 먼저 나서 합의를 깨는 셈이다. 재계에 이어 정부마저 노동자의 뺨을 때리면서 ‘위기니까 협력하자’고 말하면, 그 말을 믿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노동계 스스로 임금을 조절하는 대신에 재계와 정부는 최대한 일자리 보장에 노력한다는 ‘대타협’ 취지는 한낱 휴짓조각이 될 수밖에 없다.
경제위기 극복에 진정으로 단합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면, 정부는 비정규직법 개정 추진을 중단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다른 나라를 부러워하기 전에, 주요 정책을 일방적으로 추진하려는 자세부터 버려야 한다. 그래야 ‘사회적 합의’가 숨을 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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