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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3.16 20:29 수정 : 2009.03.16 20:29

사설

촛불집회 재판에 법원 고위층이 부당하게 간섭한 것이 사실이라는 법원의 자체 조사결과가 나왔다. 대법원 진상조사단은 신영철 대법관이 지난해 서울중앙지방법원장 시절 전자우편이나 전화로 재판의 진행과 내용에 관여한 듯하다고 밝혔다. 몰아주기 배당 의혹에 대해서도 사법행정권의 남용일 수 있다고 밝혔다. 조사단은 이런 행위가 법관의 독립을 침해했다고 지적했다. 마땅한 결론이다.

이런 결론이 내려졌으니 신 대법관 등의 사퇴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 됐다. 직권남용 여부까지 따질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그렇게 개인 잘못을 묻는 데서 그칠 일이 아니다. 당장 이용훈 대법원장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대법원장은 지난해 이미 신 대법관의 부적절한 행동과 판사들의 반발 사실을 알고서도 그를 대법관으로 제청했다. 신 대법관의 전자우편 내용이 자신의 뜻과 다르지 않다고도 말했다. 이번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제도적 개선을 이끌어야 할 사법부 수장에겐 어울리지 않는 오점이다.

촛불 재판의 신뢰성과 공정성도 의심받게 됐다. 법원은 신 대법관 등의 압력은 있었지만 재판 결과에는 영향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당시 재판을 받은 당사자들도 재판 과정이나 양형에서 심각하게 불합리하거나 오락가락한 사례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사실이라면 법원 스스로 바로잡는 방법을 찾는 게 옳다.

조사단의 지적대로 이번 사태의 본질은 법원 독립의 침해다. 정치권력이나 일부 언론 등 법원을 흔들려는 외부의 압력이 실제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는 이번 조사에서도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법원 내부의 문제점들이 재판 독립을 침해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번 사건으로 확인됐다. 법원 안팎에서 ‘사법부의 관료화’라며 이미 지적하고 있던 문제들이다.

‘사법 관료화’ 벗어나야

무엇보다, 대법원장을 정점으로 한 피라미드식 서열구조와 승진제도에서 근본 원인을 찾을 수밖에 없다. 판사들이 법원장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법원장이 지닌 인사평정권과 대법원장이 독점적으로 행사하는 법관 인사권 때문일 것이다.


그런 잘못된 상하관계 구조는 이번 일을 계기로 개선돼야 한다. 양심과 법에 따라 독립적으로 재판해야 할 법관이 승진과 인사에 연연하게 된다면, 고위법관이나 그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외부의 간섭은 피할 수 없게 된다. 대법원장의 인사권·보직권 독점을 없애고, 인사위원회 설치 등 투명하고 수평적인 인사체제를 모색해야 한다.

법관 스스로 서열화와 관료화에 물들어 있는 것은 아닌지도 되돌아봐야 한다. 법원의 관료화는 구시대적 법원 구조 못잖게 법관 사회에 만연한 출세주의와 개인주의 탓도 크다. 그러지 않고 하급법원도 종국재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이번처럼 압력에 못이긴 재판이 나오진 않았을 것이다.

법원이 이번 일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으려면, 지금보다 더한 각오와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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