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3.17 21:12
수정 : 2009.03.17 21:12
사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미국 최대 보험사 에이아이지(AIG)가 보너스를 지급할 계획이라는 언론보도를 보고 잔뜩 화가 났다고 한다. 부도 위기에 몰려 구제금융까지 받은 기업이 ‘보너스 잔치’를 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생각에서일 터이다. 너무나도 당연한 분노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처럼 화를 낸 것은 보너스 금액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다. 사실 에이아이지가 지급하려고 한 보너스 금액은 지원받은 구제금융(1800억달러)의 1000분의 1도 안 되는 1억6500만달러 정도다. 하지만 이 문제는 오바마 대통령의 지적대로 ‘금액 문제’ 아닌 ‘가치 문제’다. 국민의 세금으로 쓰러져 가는 기업을 살려주었더니 그 기업이 뼈를 깎는 자구노력은커녕 보너스 잔치까지 벌인다면 그 사회는 정의로운 사회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이와는 영 딴판으로 가고 있다. 금융기관에 사실상 구제금융을 지원하면서도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를 오히려 방조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정부가 공적자금 성격으로 조성하고 있는 자금은 구조조정기금 등 모두 60조원이 넘는다. 그런데 이 자금들은 법적인 통제를 제대로 받지 않는 ‘유사 공적자금’이다. 따라서 사실상 국민 세금인 이 돈을 금융기관에 투입하면서도 경영실패에 따른 문책이나 사후 관리를 철저히 할 수 없게 돼 있다.
정부로서는 법적인 ‘공적자금’을 조성하려면 번거로운 국회 동의 절차를 거쳐야 하고, 법적으로 통제받는 공적자금으로는 부실 금융기관을 적기에 지원하기 어려운 점 등을 고려해 이런 편법을 쓰려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는 필연적으로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를 조장하고, 정부로서도 이 자금을 이용해 금융기관을 통제하려는 ‘관치 유혹’에 빠지게 된다. 더 큰 문제는 사실상 국민 혈세로 조성된 자금의 사용을 몇몇 관료들의 자의적인 판단에 맡기게 된다는 점이다.
지난 외환위기 때는 모든 공적자금 조성, 투입, 사후관리 등이 철저히 법의 통제를 받았다. 그럼에도 부실 금융기관과 기업들의 도덕적 해이를 완벽하게 막아내지 못했다. 정부는 그때의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 눈앞의 편의를 위해 공적자금을 자신들의 ‘뒷주머니’처럼 여기고 마음대로 사용하려 한다면 국민의 동의를 받기 어려울 뿐 아니라 위기 극복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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