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3.18 21:14
수정 : 2009.03.18 21:14
사설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는 그제 “워싱턴 컨센서스로 대표되는 지난 40년 동안의 유력한 신념이 종말을 맞았다”는 말로 신자유주의 시대가 끝났음을 선언했다. 작은 정부와 시장 자율을 중시하는 신자유주의는 지난해 10월 국제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사실상 사망 선고를 받은 상태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의 발상지라 할 수 있는 영국에서 현직 총리가 공식적으로 한 시대의 종언을 선언한 것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영국 금융감독청(FSA)은 이어 은행 자본 확충과 헤지펀드 감독 강화 등을 뼈대로 하는 새로운 금융규제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미국에서도 버락 오바마 행정부 출범과 더불어 신자유주의 시대가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다. 월가 출신으로 대표적인 시장옹호론자였던 헨리 폴슨 전 미국 재무장관 역시 그제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 기고에서 “기존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새로운 (금융)규제 시스템이 도입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자유주의가 그 발상지인 미국과 영국에서조차 발을 붙일 수 없게 된 것이다.
특히 금융규제 강화를 위한 세계적인 움직임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새달 2일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주요·신흥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금융규제 강화에 대한 국제적 합의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한 나라만 규제를 강화하면 해당 국가가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잃기 때문에 결국 국제사회가 비슷한 수준으로 보조를 맞추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정부가 강조해온 ‘글로벌 스탠더드’가 바뀌는 셈이다.
걱정되는 것은 우리 정부의 성급한 대응이다. 세계적인 금융규제 강화 움직임을 거스르면서 뒤늦게 금융규제 완화를 외치고 있다. 금산분리 완화와 산업은행 민영화 등 일련의 금융 관련 법안들이 그것이다. 이번 금융위기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다. 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는 못할 뿐 아니라 국가가 적절히 개입할 때 시장이 더 잘 돌아간다는 사실이다. 금융위기가 위급한 순간을 넘기고 나면 대부분의 나라들은 금융규제 강화를 뼈대로 하는 제도 개혁에 나설 것이 확실하다.
우리도 예외일 수는 없다. 이명박 정부로서는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던 규제완화를 철회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위기는 하나의 역사적 전환점이다. 때론 시대적 변화를 겸손하게 받아들일 줄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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