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3.19 22:27
수정 : 2009.03.19 22:27
사설
국방부가 그제 군 법무관 2명을 전격 파면했다. 이들은, 국방부의 지난해 7월 ‘불온서적’ 목록 지정이 장병들의 행복추구권 등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그해 10월 헌법소원을 제기했던 7명 중 ‘주동자급’이다. 7명 가운데 국방부의 압력과 회유를 받아 소를 취하한 2명은 사실상 징계 대상에서 빠졌고, 소 취하를 하지 않았으나 ‘단순 가담’한 3명은 감봉·근신 등의 경징계를 받았다.
국방부는 이들에게 “군 기강 문란과 복종 의무 위반, 장교 품위 손상” 등의 죄목을 들이댔다. 명목은 그럴듯해 보인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군의 논리는 군색하기 짝이 없다. 군 당국은 이들이 헌소를 제기한 이후 한 달 동안 이들의 출근시간, 언론 접촉 여부까지 샅샅이 뒤지며 ‘먼지털기식 조사’를 벌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군인사법과 군인복무규율을 직접 위반한 사실을 찾지 못하자, 지난해 말 사실상 조사를 마무리했다.
이후 몇 달 잠잠하더니, 이번에 불쑥 파면 발표가 나왔다. 이들을 대리하는 변호사조차 “애초 징계 사유를 찾지 못해 조사를 마무리한 군 당국이 갑자기 파면 결정을 내린 배경이 의아하다”고 말할 정도다. 이러고 보니, 올해 들어 사회 갈등과 불안 요인을 힘으로 제압하려는 이명박 정권의 국정운영 기조가 군대에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풀이가 나오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한 군 관계자도 “청와대 쪽의 처벌 의지가 워낙 완강했다”고 말했다.
군 법무관이 파면을 당하면 10년 이상 장기복무 법무관은 전역을 하더라도 변호사 자격을 얻지 못한다. 사법시험 출신의 단기복무 법무관도 국가공무원법에 따라 5년간 공직 임용이 불가능해진다. 한마디로 밥그릇을 빼앗는 가혹한 처벌이다. 군 내부에서도 “정직 정도면 몰라도 너무 심한 것 아니냐”는 동정론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 더구나 군사정권이 종식된 이래 군에서 성폭행이나 뇌물수수 외의 사건으로 이런 중징계를 당한 사례가 없다.
징계 수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사건을 보는 시각이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보고 의무 등 군 내부 절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군 당국이 불온문서 지정을 통해 병사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헌법적 가치를 훼손한 사실에 있다. 이런 점에서 군 당국의 이번 파면 조처는 ‘인권과 함께하는 군대’를 바라는 국민의 열망을 이중으로 저버리는 처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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