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3.20 19:28
수정 : 2009.03.20 19:28
사설
성적 최상위권 학생 3명이 입학하자마자 다른 고교로 전학한 것을 두고 서울의 두 학교 사이에 분쟁이 일고 있다고 한다. 주소지 변경에 따른 자연스런 전학이라느니, 우수 학생 빼돌리기라느니 옥신각신하지만, 성격은 자명하다. 학생들은 대학 진학 실적이 좋은 학교로 몰려갔고, 받는 학교 쪽에서는 각종 편의와 혜택으로 이들을 유혹한 것이다. 내년부터 시행되는 고교 선택제를 앞두고, 학교 서열을 높이기 위해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보여주는 예고편이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교육과학기술부는 엊그제 학교 서열화에 결정적 빌미가 될 수능 성적의 전수 공개를 강행하겠다고 밝혔다. 학교 이름을 가린 채 공개한다고 하지만, 학생 수 등을 대조해 보면 학교는 쉽게 파악된다. 지금까지 특정 대학 합격생 수에 따라 모호하게 이뤄졌던 학교 서열화가 앞으로는 확실한 근거를 갖추게 된 것이다. 이른바 주요 대학으로서는 고교 등급제를 적용할 빌미가 될 터이고, 농어촌 학교나 도시의 서민 밀집지역 학교는 학교 선택제와 맞물려 공동화나 슬럼화를 피하기 어렵다. 이런 부작용이 있음에도 공개를 재촉하는 여당이나 이를 고분고분 받아들인 교육당국의 무모함이 놀랍기만 하다.
물론 행정법원과 고등법원에서 공개하라고 판결을 내렸으니 교과부도 할 말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교과부는 법리가 아니라 교육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교과부는 대법원에 상고하면서, 전수 공개가 전국 학교의 서열화를 재촉하고, 그로 말미암아 교육과정의 파행을 초래할 수 있다고 적시했다. 교과부로서는 최소한 대법원 판결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게 도리고 원칙이다. 제 입장을 이렇게 손바닥 뒤집듯 바꾸는데, 누가 정부 정책을 믿고 따를까.
정부나 여당은 공개 이유로 정책 연구 목적을 강조한다. 그러나 진정 연구 목적이라면 표집 자료로도 충분하다. 수능 이외에도 진단평가나 학업성취도 평가 자료도 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은 연구 목적이 아니라 입시 목적으로 치르는 시험이다. 연구 자료로 적합하지도 않다. 학생과 학교에게는 중요한 신상정보다. 익명이라 해도 학생과 학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그런 절차도 밟지 않았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전수 공개는 빈대도 못 잡고 초가삼간만 태우는 짓이다. 여당은 공개 요구를 철회하고, 정부는 표집 자료 공개로 방침을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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