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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3.23 20:27 수정 : 2009.03.24 09:48

사설

한국-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어제와 오늘 이틀간 열리는 8차 협상을 끝으로 전체 협상을 마무리하고 4월 초 최종 타결할 예정이라고 한다. 하지만 협상 진행 방식이나 협상 내용 등에 문제가 많아, 이대로 타결되면 그 충격은 한-미 에프티에이에 못지않을 것으로 보인다.

가장 큰 문제는 정부가 사실상 밀실협상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조차 협상 과정과 내용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다 보니 협상 진행 상황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협상 결과에 이해관계가 크게 걸려 있는 국내 산업계도 속수무책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종 협상 결과만 발표될 경우, 국내 업계에 손해가 되더라도 손 한 번 쓰지 못하고 당할 수밖에 없다. 협상 타결 전에 상세한 협상 내용을 공개한 뒤 국민 여론을 수렴하는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정부는 에프티에이를 추진할 때마다 동북아 허브로의 도약, 경제 체질 개선 운운하지만 관건은 얼마나 경제적 이득을 볼 수 있느냐다. 이득도 없는 에프티에이를 추진한다면 그것은 상대국에 우리 시장만 열어주는 꼴이 된다. 한-유럽연합 에프티에이가 꼭 그 모양이다. 유럽연합은 중국에 이어 우리의 2대 교역국이면서 우리의 최대 무역흑자 상대다. 지난 2007년 192억달러 흑자를 봤고, 지난해에도 184억달러의 흑자를 기록했다. 이런 상황인데도 한-유럽연합 에프티에이를 왜 우리가 적극 나서 추진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자동차의 경우만 봐도 그렇다. 정부는 유럽연합의 자동차 관세가 10%로, 우리의 8%보다 높기 때문에 관세가 철폐되면 자동차가 최대 수혜품목이 될 것이라고 한다. 초등학생 수준의 유치한 논리다. 유럽연합에 대한 자동차 수출은 관세율보다는 원산지(부가가치 기준) 및 현지부품 사용 비율, 환경·기술 장벽 등 비관세 요인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오히려 유럽연합이 주장해온 자동차 기술표준 문제를 우리가 양보함으로써 유럽차의 국내 수출이 훨씬 용이하게 됐다. 이대로 협상이 타결되면 자동차는 대표적인 수혜 품목이 아니라 최대의 피해 품목이 될 가능성이 더 크다.

관심 품목인 섬유 부문도 마찬가지다. 섬유에 대한 관세율은 유럽연합이 6~12%, 우리가 8~13%여서 관세가 폐지되면 가장 먼저 효과가 나타날 부문이다. 하지만 관세가 폐지되더라도 이미 경쟁력을 잃은 한국산 섬유제품의 유럽 수출은 늘어날 가능성이 작은 반면 경쟁력 있는 고가의 유럽 제품들은 국내 수입이 급증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개성공단 제품의 한국산 인정도 사실상 무산됨으로써 이곳에서 생산되는 제품의 유럽연합 수출도 어렵게 됐다.

유럽연합은 협상 과정에서 이미 타결된 한-미 에프티에이를 기본으로 하고, 그보다 높은 수준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득보다 실이 훨씬 많은 협상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정부는 4월 초에 열리는 주요·신흥 20국(G20) 정상회의에 맞춰 협상을 타결하려는 일정을 세워놓고 있다. 정부는 이런 일정에 얽매이지 말고, 국내 업계와 전문가들이 협상 내용의 득실을 시간을 두고 꼼꼼히 따져볼 수 있게 관련 정보를 공개하기 바란다. 국민의 생존이 걸린 에프티에이 협상을 ‘정치적 이벤트’로 이용하려 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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