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3.25 20:14
수정 : 2009.03.25 22:08
사설
오늘 차관회의에서 행정안전부(행안부)가 내놓은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조직 축소안을 논의한다. 행안부는 지난 20일 인권위 정원을 21.2%(44명) 줄이고 기구를 축소하는 최종안을 인권위에 통보하고 오늘 회의를 거쳐 31일 국무회의에서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결론부터 말하면 행안부의 안은 얼토당토않다. 지난 연말 인권위 축소 방침을 제기한 행안부는 그동안 감축 비율을 50%, 30% 그리고 21.2%로 바꿨지만, 감축 근거는 내놓지 못했다. 감사원 감사 결과를 들먹이지만, 거기서도 인력감축 요구는 없었다. 그럼에도 인권위 축소를 고집하는 데는 청와대의 의지가 실려 있다는 분석도 있다. 촛불시위에 대한 인권위의 의견표명에 괘씸죄가 적용됐다는 얘기다.
사실이 그렇다면 이는 지나친 단견이다. 인권위는 애초 정당 및 시민사회의 의견에 따라 독립기관으로 설립됐다.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가 전체 진정사건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나라에서 정치적 독립은 그 존립의 필수조건이기 때문이다. 이런 독립성에 힘입은 다양한 활동으로 인권위는 지난 8년간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을 크게 높였다.
“한국 인권위는 세계 국가인권기구들의 존경을 받는 지도자 역할을 담당해 왔다”는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ICC) 제니퍼 린치 위원장의 평가는 결코 빈말이 아니다. 실제로 이웃 중국과 일본이 자국 인권위를 만들기 위해 우리 인권위를 모델로 연구할 정도다. 우리나라는 이런 국제적 평판을 기반으로 내년 조정위원회 의장국에 수임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정부가 조직 축소를 강행한다면 이런 가능성이 물건너간다. 당장 린치 위원장은 조직 축소가 인권위 독립성에 영향을 끼쳐 한국의 조정위원회 의장국 수임을 무산시킬 수 있다고 공개경고했다.
국제적 평판만 문제가 되는 게 아니다. 현재의 인권위 인력 수준으론 제기된 현안을 따라가기에도 버겁다. 예를 들어 국가인권위법은 인권위에 인권 침해에 대한 판단 지침을 만들도록 요구하지만, 지난 8년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인력부족 탓이다. 이런 상황에서 인력을 대폭 감축하면 현장조사도 어려워진다. 이는 품격 높고 존경받는 나라의 모습이 아니다. 정부는 인권위 축소안을 즉각 거두어들이고, 조직개편 문제는 인권위 스스로 결정하게 해야 한다. 인권위는 행안부의 하위 기관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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