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3.30 21:42
수정 : 2009.03.30 21:42
사설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정·관계 로비 수사를 놓고 여러 논란이 일고 있다. 주로 검찰 수사의 공정성에 대한 의심이다. 검찰이 옛 노무현 정부 인사들은 엄하게 다루면서 정작 힘을 가진 현 여권 인사들에 대해선 구색만 맞추려는 듯 솜방망이 수사를 한다는 것이다. 여야 공방도 거세다. ‘현 여권의 초특급 실세가 연관됐다’거나 ‘노무현 정권의 비리 저수지’라는 주장으로 서로를 공격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정상적일 순 없다. 수사 대신 정치적 논란만 증폭되면 비리를 발본색원해야 할 검찰 수사도 흔들릴 수 있다. 하지만 애초 검찰이 공정하고 투명하게 수사했으면 논란도 아예 없을 것이니, 검찰을 먼저 탓하지 않을 수 없다.
아닌 게 아니라 ‘죽은 권력’과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검찰 수사의 속도와 강도에선 차이가 확연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인 이광재 민주당 의원과 박정규 전 청와대 민정수석 등이 강도 높은 수사 끝에 구속된 것과 달리, 끊임없이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한나라당 의원들과 현 정부 인사들에 대해선 소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등 수사가 지지부진하다. 박 회장한테서 수천만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는 박진 한나라당 의원에 대해선 액수가 1억원 미만이라는 따위의 이해하기 힘든 이유로 구속을 망설인다고 한다. 박 회장과 박 의원을 연결해 줬다는 천신일씨에 대한 수사도 오리무중이다. 천씨가 박 회장과 맺어온 수십년 친분 못지않게 이명박 대통령과도 40년 넘게 인연을 맺어온 최측근이어서 수사 칼날이 무뎌진 게 아니냐는 의심이 나올 만도 하게 됐다.
아직 수사 초반이라지만, 검찰 수사의 방향도 걱정된다. ‘박연차 리스트’가 국민의 공분을 사는 것은 여야 정치인들에 대한 불법적 정치자금 수수 때문만이 아니다. 그보다는 박 회장이 권력 실세와의 친분 관계를 이용해 이권을 챙겼을 것이라는 의혹, 그리고 이들 비리 의혹이나 탈세 혐의를 덮고자 정·관계 로비를 벌였을 것이라는 의혹 때문이다. 실제로 박 회장이 이명박 정부 인사들에게 처벌을 면하게 해달라는 등의 로비를 벌였다고 볼 근거는 한둘이 아니다. 그가 그런 부탁을 추부길 전 청와대 비서관한테만 했겠는가. 이번 수사의 ‘몸통’도 이 대목일 것이다. 검찰은 괜히 권력의 눈치를 보다 국민 신뢰를 되찾을 기회를 놓치는 잘못을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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