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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3.31 21:51 수정 : 2009.03.31 21:51

사설

국무회의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인원을 20% 이상 줄이는 직제개정령안을 그제 행정안전부 원안대로 통과시켰다. 인권위는 이에 맞서 직제개정안에 대한 대통령령 효력정지 가처분신청과 권한쟁의 심판청구를 헌법재판소에 냈다. 국가기관 사이 권한을 다투는 희귀한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책임은 전적으로 여론에 귀 막은 채 직제개정안을 밀어붙인 정부에 있다. 인권위는 행정부의 일개 부처가 아닌 독립적 헌법기관이다. 그런데도 행안부는 인권위와 제대로 된 협의 한 번 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직제개편안을 마련했다. 조직을 축소해야 하는 이유도 제대로 내놓지 않았다. 인권위는 전원회의 등 다양한 통로를 통해 독립성을 전제로 협의 처리할 것을 요구했지만 철저히 외면당했다. 비등하는 국내외의 비판 여론도 완전히 무시됐다. 인권위의 독립성이나 비판 여론 따위는 안중에 없다는 뜻이 아니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처리 과정에서 인권위의 독립성이 무시된 것보다 훨씬 더 큰 문제는 축소안이 관철되면 인권위 자체가 무력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통과된 직제개편안에 따라 가장 큰 타격을 입는 부문은 조사·정책·교육 분야다. 인권위의 최근 업무 현황을 보면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지난해 인권위에 접수된 진정 건수는 6700여건으로, 처음 문을 연 2001년의 2.3배나 된다. 상담·민원은 10배 정도 는 3만건에 이른다. 여기에 장애인차별금지법과 연령차별금지법이 시행됨에 따라 조사 업무량이 더 늘어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런 상황에서 조사인력을 줄이는 것은 일을 하지 말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직제개편에 따른 인원 감축 우선순위가 별정직이나 일반계약직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 역시 큰 문제다. 전문성과 인권 감수성이 있는 전문인력이 배제돼 인권위가 공무원 중심 조직이 된다는 얘기다. 이렇게 되면 인권위는 독립성을 잃고 구색 맞추기 조직으로 전락하기 쉽다.

이렇게 보면 온갖 비판 여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직제개편안을 밀어붙인 정부의 본뜻이 어디 있는지 분명해진다. 독립성을 내세우며 정부에 대한 비판도 마다 않는 인권위를 무력화하겠다는 것이다. 이제 인권위가 국민의 인권 보호 업무를 제대로 할 수 있을지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에 달렸다. 헌재의 명철한 판단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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