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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4.08 21:57 수정 : 2009.04.08 21:57

사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리 의혹을 접하며 느끼는 심정은 충격과 분노 이전에 서글픔과 허탈함이 더 크다. 유달리 청렴함과 도덕성을 강조한 노 전 대통령의 ‘배신’에 대한 실망 때문만은 아니다. 이제는 우리 사회가 ‘졸업’했다고 여긴 전직 대통령의 검은돈 수수 관행이 아직도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심정은 참담하다. 앞선 문민정부나 국민의 정부도 대통령 친인척 등 주변 인사들의 숱한 비리 의혹으로 만신창이가 됐다. 그렇지만 최소한 대통령까지 비리 의혹에 연루된 적은 없었다. 전직 대통령 자신이 의혹의 당사자로 떠오른 것 자체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성수대교가 무너진 느낌”이라는 한 민주당 의원의 말은, 그래서 딱히 민주당원들만이 느끼는 심정이 아닐 듯하다.

상황이 이렇게 엄중한데도 노 전 대통령이 보이는 태도는 구차하고 비겁하기 짝이 없다. 검찰이 발표하기 전에 앞질러 ‘자백’과 ‘사과’를 했다고는 하지만, 그 내용은 오히려 ‘면피용’에 가깝다. 받은 돈의 전체 규모는 얼마인지, 그 돈은 어디에 썼는지, 노 전 대통령 자신은 언제 알았고 어느 선까지 개입했는지 등 어느 것 하나 속시원히 털어놓은 게 없다. 진정한 참회와 반성은 없고 어떻게든 궁지를 모면해 보려는 안간힘만 느껴진다. 그런데도 노 전 대통령 쪽은 “추가적인 설명은 당분간 하지 않겠다”며 입을 다물어 버렸다.

노 전 대통령의 최대 장점은 누가 뭐래도 ‘거침없음’과 ‘솔직함’이었다. 대통령 재임 시절 아무도 예기치 않은 파격적인 언행으로 주변을 깜짝 놀라게 한 적도 많았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노 전 대통령의 요즘 모습은 그런 기개나 파격, 솔직함과는 동떨어져 있다. ‘아내’를 뜻하는 수많은 단어를 놓아두고 굳이 ‘집의 부탁’이라는 애매모호한 표현을 쓴 것부터가 구차하다.

노 전 대통령 쪽은 “검찰에 나가 모든 것을 말하겠다”고 말한다. “먼저 자세한 내용을 밝히면 수사에 미리 선을 그으려는 것처럼 비칠 것 같아서”라는 명분도 내세웠다. 하지만 그런 변명은 옹색하기만 하다. 노 전 대통령이 진실을 털어놓을 대상은 검찰이 아니라 국민이다.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남김없이 고해성사하고 석고대죄해야 한다. 그것이 한 나라의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 보여야 할 마땅한 예의다. 검찰에 나가 진술하고, 혐의 여부에 따라 적합한 죗값을 치르는 것은 그다음 일이다. 만약 노 전 대통령이 자신의 검찰 출석이 ‘파격’이고, 그것으로 국민의 동정심을 자극할 수 있다고 여긴다면 큰 오산이다.

이번 사건의 심각성은, 그 여파가 노 전 대통령이나 참여정부의 도덕성 훼손 차원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데 있다. 변화와 개혁, 깨끗한 사회를 갈망하는 우리 사회 구성원 전체에 치유하기 힘든 깊은 상처를 안겨준 게 숨길 수 없는 현실이다. 이미 물은 엎질러졌다. 이제 노 전 대통령에게 남은 과제는 한 가지다. 그나마 뒷마무리라도 정직하고 의연하게 하는 일이다. 그것이 자신을 지지했던 유권자, 그리고 진보·개혁 세력 전체의 기대를 배반한 데 대한 최소한의 속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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