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4.08 21:59
수정 : 2009.04.08 21:59
사설
지난해 수사기관이 감청한 전화번호와 전자우편 주소 건수가 무려 9000건을 넘었다고 한다. 2006년 미국 연방법원에 보고된 건수(2208건)보다 4배 이상 많다. 통화내역 열람 건수는 전년도보다 18.7%, 이용자의 인적사항(통신자료) 제공 건수는 25.1%씩 늘었다. ‘감청 천국’을 향한 질주가 놀랍다.
감청 대상 건수가 크게 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감청을 주도한 기관을 보면 그 전조가 심상치 않다. 전체 감청 대상의 98.5%인 8867건을 감청한 곳은 다름 아닌 국정원이었다. 2000년엔 전체의 44.5%에 불과했다. 경찰과 검찰 등 수사기관의 건수는 해마다 줄어 지난해엔 94건, 24건에 그친 것과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그럼에도 방송통신위원회는 그제 이 자료를 발표하면서 “지능화·첨단화된 강력범죄 증가 추세에 대응하기 위해선 통신수사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둘러댔다. 국정원이 강력범죄에 대해서까지 정보를 수집하고 수사하고 있다는 뜻은 아닐 게다. 국정원의 수집 대상 정보는 대공 혹은 대테러 등 특수 분야에 국한된다. 그렇다면 방통위는 왜 오해만 살 뿐인 변명을 굳이 했을까.
이 정부는 출범 이후 줄곧 국정원의 자유로운 도·감청을 허용하기 위해 애를 썼다. 4월 임시국회에선 사실상 통신비밀 침해법인 통신비밀 보호법 개정안을 처리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외국인에 대해서는, 통신 상대가 누군지 막론하고 국정원이 직접 감청할 수 있도록 하고,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든 통신망에 감청 장치 설치를 의무화한 법안이다. 국정원의 도·감청에 날개를 달아주는 내용들이다. 지난해 감청 대상 건수가 소폭 증가에 그친 이유도 이 법안 통과를 앞두고 국정원이 몸을 사린 결과일 수 있다는 설명은 그래서 나온다.
마지막 감시자인 법원조차 믿기 힘들다. 법원의 감청 영장 기각률은 5%뿐이었다. 이제 누가 괴물의 부활을 막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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