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4.09 21:41
수정 : 2009.04.09 21:41
사설
일본 정부가 어제 다시 한반도 침략을 정당화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중학교 역사교과서를 검정에서 합격시켰다. 이 교과서는 2001년과 2005년 두 차례에 걸쳐 한-일 관계에 파란을 일으킨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의 후소사판 교과서와 내용이 대동소이하다. 새역모가 분열하면서 이 모임 주류 쪽이 지유사라는 출판사를 통해 새로 낸 교과서이기 때문이다. 우리로서는 역사왜곡 교과서가 두 종으로 늘어난 점에서 결코 반갑지 않다.
이 교과서는 일본 식민지 정책의 초점이 조선의 근대화에 있었다고 미화하고,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에 근거한 위협을 강조하며 일본의 한반도 침략과 지배를 합리화하고 있다. 또 징용·징병 등의 강제성을 애매모호하게 기술하고, 강제동원된 군대위안부는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 고대부터 근대까지 우리 정부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대목이 열세 군데나 된다. 입만 열면 미래지향적 관계의 중요성을 되뇌면서, 이런 왜곡된 사실을 담고 있는 교과서를 미래의 주역인 중학생들에게 버젓이 가르치도록 일본 정부가 허가한 것이다.
일본 정부는 검정제도 아래서는 명백한 사실의 오류가 아닌 한 정부로서도 허가하지 않을 방법이 없다고 말한다. 형식논리로는 틀리지 않는 얘기지만, 외교적으로는 ‘말 따로 행동 따로’다. 일본 정부는 1995년 무라야마 담화를 통해 식민지배와 침략을 반성한 바 있고, 93년엔 일본군 위안부 모집에 정부 관헌 등이 직접 관여했음을 인정했다. 한 입으로 두말하는 일본 정부를 신뢰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우리 정부는 즉각 “강력히 항의하며, 근본적인 시정을 촉구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고, 외교 경로를 통해 이런 뜻을 일본 정부에 전했다. 하지만 말의 강도를 뒷받침하는 결기는 보이지 않는다. 정부가 일본 역사왜곡 교과서에 대처할 여지를 스스로 좁힌 면도 있다. 정부는 지난해 뉴라이트 쪽이 수정을 요구한 고교 검정 역사교과서를 정해진 절차를 무시하고 내용에 대한 진지한 검토도 없이 마구 뜯어고쳤다. 심지어 교과서 채택 문제에까지 깊이 개입했다. 우리는 마음대로 역사를 뜯어고치면서 남의 나라에 그러지 말라고 하면 설득력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렇더라도 일본의 역사왜곡에 형식적으로만 대응한다면 더 큰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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