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4.09 21:43
수정 : 2009.04.09 21:43
사설
<문화방송>(MBC) 경영진이 신경민 ‘뉴스데스크’ 앵커와 라디오 프로그램 ‘김미화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의 진행자 김미화씨를 교체하려는 데 대해 기자들과 라디오 피디들이 제작거부에 들어갔다. 기자총회 결정으로 제작거부에 돌입하는 것은 엠비시 사상 초유의 일이라 한다. 이런 사태가 발생한 것은 두 사람의 교체가 정권의 압력에 대한 엠비시의 굴복을 의미하는 것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날카로운 클로징 멘트(맺는말)로 정권의 미움을 산 신 앵커의 교체 문제에 대해 전영배 보도국장은 10여일 전 사내 여론을 광범하게 수렴해 결정하겠다고 했다. 이에 기자회는 여론조사를 통해 절대다수 기자들이 앵커 교체에 반대함을 확인하고 이 사실을 국장을 비롯한 경영진에게 전했지만, 돌아온 것은 자신의 직을 걸고 앵커 교체를 강행하겠다는 전 국장의 고집이었다. 경영진 쪽은 신 앵커의 클로징 멘트가 너무 어렵다는 등의 이유를 대고 있으나 이를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은 없다. 별도로 성명을 낸 차장급 기자들은 “오히려 엠비시 뉴스가 비판을 용납하지 않는 정권의 압력에 굴복하려 한다는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최근 들어 엠비시 뉴스의 변질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연성 뉴스가 과잉배치되고 권력 비판 기사는 줄어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시청자들은 뉴스의 이런 변질을 경영진의 정치적 고려 탓으로 의심한다. 방송법 개정 기도, 피디수첩에 대한 검찰 수사,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제재 등 전방위적으로 압박을 가해온 정권과 타협을 기도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정권의 압박에 더해 경제위기로 인한 경영압박까지 극심한 상황에서 엠비시 경영진의 고민을 짐작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위기일수록 원칙을 지키고 내부 단결을 이뤄가는 게 중요하다. 지난 1년 동안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이라는 언론 본연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분투해온 내부 구성원을 등지고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고자 권력에 굴종한다면 공영방송으로서 엠비시의 미래는 없다.
엄기영 사장은 방송의 공영성 강화를 공약으로 내건 바 있다. 공영성은 권력과의 거리 유지에서 시작된다. 현재 엠비시가 처한 위기는 엄중하지만 구성원들이 일치단결한다면 헤쳐나가지 못할 이유가 없다. 엄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의 책임있는 판단을 기대한다.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