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4.17 21:53
수정 : 2009.04.17 21:53
사설
결국 지방자치단체까지 나섰다. 지자체에 ‘명문학교 육성팀’이란 공식 조직까지 등장한 것이다. 성적이 상대적으로 높은 학교에 예산을 몰아줘, 이른바 명문대학에 더 많은 학생을 보내도록 독려하는 부서다. 지자체마다 교육청이 있고 교육 예산도 따로 집행되는데, 지역 살림을 책임진 지자체가 자신의 예산까지 학력 경쟁에 퍼붓는 건 그야말로 대한민국에서나 볼 수 있는 블랙코미디다.
이런 현상은 이명박 정부가 줄기차게 추진해온 지자체 및 학교별 학력 서열화 조처의 결과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학업성취도 일제고사를 비롯해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까지 공개해 전국 학교는 물론 지자체까지 학력으로 서열화하는 마당에 민선 단체장이 가만히 있을 순 없다. 학력이 하위권이라거나, 이른바 명문대학 입학생 비율이 떨어질 경우, 당장 다음 선거가 위험하다. 게다가 내년부터 고교 선택제가 실시되는 만큼, 이른바 명문고교가 없는 지자체의 경우 학생들이 아예 다른 시군구로 떠나버려 지역내 학교가 텅텅 비는 현상까지 나타날 수 있다. 선거에서 필패 카드다. 반대로 명문대 진학률이 높을 경우 이보다 좋은 홍보용 실적은 없다.
그러나 가난한 지자체가 아무리 용을 써도 부자 지자체를 따라잡을 수 없으니, 경쟁 결과는 뻔하다. 최고의 부자 지자체인 서울 강남구는 5개교에 매년 2억원씩 지원하기로 한 데 반해 자립도가 낮은 중랑구는 1억원씩 지원한다. 성적 좋은 학생이, 그동안 진학률도 높고 지원도 풍족한 지자체의 학교를 선택하는 건 인지상정이다. 그렇다고 가난한 지자체도 손을 놓고 있을 수 없으니, 부자 지자체를 따라가다 가랑이만 찢어질 판이다. 이에 따라 농어촌 지자체에선 비용 대비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최상위권 학생들만 선별해 특별 과외교습을 시키는 이른바 공립학원까지 운영하고 있다. 참담한 현실이지만, 나무랄 수도 없다.
누구나 기억하는 학교 교육 목적은 타고난 저마다의 자질을 계발하고, 공동체 의식과 이타적 심성을 육성하여, 민주적 소양을 기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건 잠꼬대다. 명문대학 많이 보내는 게 학교의 존재 이유가 됐기 때문이다. 머잖아 학교 단위까지 식별이 가능한 시군구별 수능성적이 공개될 예정이다. 학교 교육의 황폐화와 대다수 학생의 절망은 피할 수 없다. 참으로 나쁜 정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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