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4.23 21:45
수정 : 2009.04.23 21:45
사설
산업안전법은 석면이 0.1% 이상 함유된 제품의 제조나 수입은 물론 사용까지 금지하고 있다. 또 석면 함유량이 1%를 초과하는 건축물에 대해서는 정부의 허가를 받아 정해진 절차와 방법에 따라 해체·제거하도록 했다. 어기면 5년 이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 벌금이라는 중형에 처하도록 했다. 기준은 선진국 수준이다.
그러나 눈을 잠깐 시골로 돌려보자. 석면 함유량이 무려 10% 안팎에 이르는 슬레이트 지붕이 무수하게 널려 있다. 엊그제 환경부 발표로는 38%의 농가 본채 지붕이 슬레이트였다. 별채나 창고 축사까지 포함하면 슬레이트를 쓴 농가는 82%에 이른다. 대부분 1960~70년대에 올린 것들이다. 제아무리 단단하게 응고된 물질이라도, 자연적인 풍화와 침식으로 ‘소리 없는 살인자’ 석면 먼지를 날릴 때가 지났다. 실제 서울 도심의 슬레이트 지붕 6곳에서 흘러내린 빗물과 눈 녹은 물을 모아 조사한 결과 모든 시료에서 석면이 검출됐다. 이미 거주자뿐 아니라 이웃에게도 피해를 끼칠 수 있는 형편이다.
석면이 미량이나마 포함돼 있다고 1000여개의 의약품을 회수하도록 한 정부이니, 지붕을 시급히 교체해야 한다는 것은 인정한다. 문제는 교체 비용을 누가 댈 것인가다. 현재 석면 지붕 아래서 사는 이는 대부분 노인이다. 수입도 일정치 않고, 교체할 힘도 의지도 없다. 게다가 지붕 교체를 주도한 건 농민들이 아니었다. 농가 지붕에 가볍고 방수성과 내구성이 강한 슬레이트가 얹히기 시작한 것은 60년대였다. 그러나 집단적으로 교체되기 시작한 것은 새마을운동 이후였다. 정부는 이 운동의 하나로 돈까지 빌려주며 농가 지붕 개량 사업을 전국적으로 벌였다. 이에 따라 72년부터 해마다 40만채씩, 6년 동안 240만채의 농가 지붕에 기와나 슬레이트가 얹혔다. 농민들은 해마다 초가지붕을 교체하는 수고를 덜 수 있었지만, ‘소리 없는 살인자’와 동거해야 했다. 위험성에 대한 정보가 전무했던 까닭에 낡은 슬레이트는 마구 파쇄해 버리거나, 심지어 천렵할 때 불판 따위로 쓰기도 했다.
정부도 지원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재원이 걱정이라고 한발 뺀다. 무책임하다. 누가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켜야 하느냐는 문제가 아니다. 슬레이트 지붕을 강권하다시피 한 것만으로도 정부는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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