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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4.24 22:19 수정 : 2009.04.24 22:19

사설

다른 사람의 사생활을 은밀하게 들춰보는 것처럼 파렴치한 행위도 없다. 자신의 내밀한 내면이 다른 사람에게 노출됐을 때 느끼는 상처와 모멸감은 비할 데 없이 크고도 깊다. 그런데 이런 파렴치한 짓을 검찰이 했다. 주경복 전 서울시교육감 후보의 선거법 위반 혐의를 수사한다는 명목으로 서울중앙지검이 100여명의 전자우편을 통째로 압수한 사실이 확인됐다. 길게는 무려 7년치 이메일을 싹쓸이해 갔다니 충격적이다. 검찰은 “수사 목적의 정당한 법집행”이라고 강변하지만, 상식적으로 결코 용납하기 힘든 행위다.

검찰은 그동안 사건의 본질과는 관계없는 개인의 약점을 찾아내 수사에 활용하는 데 능한 모습을 보여왔다. 세상에 알려지면 개인에게는 치명상을 안겨줄 수 있는 은밀한 약점을 후려쳐 혐의 인정을 압박하는 따위다. 그런 검찰이 개인 ‘사생활의 보고’라 할 이메일을 통째로 가져갔으니 소름이 끼칠 노릇이다. 검찰이 왜 주경복 전 후보 쪽 사람들의 이메일만 압수하고 공정택 교육감 쪽은 하지 않았는지는 따져 물을 겨를조차 없다. 이메일을 통해 취득한 사적인 정보를 수사에 위법하게 활용하지는 않았는지, 이미 검찰 손에 넘어간 개인 정보는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지, 이 정보들이 ‘관리’되다가 이후에라도 악용될 소지는 없는 것인지, 밀려드는 의구심은 끝이 없다.

검찰은 ‘송수신이 끝난 이메일’은 형사소송법상 ‘물건’으로 취급된다고 설명한다. 전자우편이라는 게 누가 봐도 전화와 같은 통신수단 기능을 하고 있는데 물건으로 취급한다니 어이가 없다. 시대 변화에 법이 뒤떨어져도 한참 뒤떨어진 단적인 사례다. 법의 미비점을 악용한 검찰도 문제지만, 압수 대상 이메일의 기한조차 명시되지 않은 영장을 손쉽게 발부해준 법원의 태도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이제 더는 법의 미비점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통신비밀보호법과 형사소송법 등을 하루빨리 개정해야 한다.

이번 사안의 심각성은, 검찰의 파렴치한 수사관행이 바뀌지 않는 한 국민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데 있다. 이메일 압수수색뿐 아니다.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등도 검찰이 수사 목적이라는 미명 아래 마구잡이로 압수해 가는 게 현실이다. 우리의 내밀한 사생활이 공권력에 의해 언제라도 발가벗겨질 수 있다는 데 생각이 미치면 공포감이 밀려든다. 과연 우리의 인권시계는 몇 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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