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4.28 22:25
수정 : 2009.04.28 22:25
사설
오늘부터 꼭 100일 전인 1월20일 아침, 우리는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끔찍한 장면을 지켜봐야 했다. 하늘로 치솟는 거대한 불기둥, 쏟아지는 물대포의 세찬 물줄기, 끝없이 퍼져나가는 검은 연기, 그리고 망루에 매달린 사람들…. 6명의 아까운 목숨을 앗아간 이 아비규환의 대형 참사 앞에 모든 사람이 넋을 잃고, 눈물짓고, 분노했다. 사건의 진상을 철저히 규명해 책임을 묻고, 다시는 이런 불행이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그리고 100일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계절도 엄동설한에서 훌쩍 벗어나 이제 산천이 새롭게 옷을 갈아입는 5월의 문턱에 다가섰다. 하지만 비극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서럽게 숨져간 희생자들의 주검은 아직도 양지바른 언덕에 묻히지 못하고 있다. 이젠 저세상에서 철거 걱정 없이 편안히 쉬라는 간절한 기원도 부질없이, 그들의 넋은 검찰이 씌운 ‘가해자’의 멍에를 지고 외롭게 이승을 떠돌고 있다. 유족들이 토해내는 오열은 그날의 화염만큼이나 뜨겁다. 그들이 앞으로 더 울어야 할 눈물이 얼마나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그 죽음은 서서히 일반인들의 뇌리에서 잊혀 가고 있다.
참사 이후 한동안 반짝했던 정부와 정치권의 제도 정비 약속도 점차 ‘없던 일’이 돼 가고 있다. 그사이 재개발 갈등은 곳곳에서 폭발 직전으로 치닫고 있다. 애초 위정자들에게 기대했던 통렬한 도덕적 반성과 제도적 개선 노력,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이뤄진 것이 없다. 정부는 오히려 추모집회를 방해하고, 관련자들을 불법 시위 혐의로 잡아 가두는 데만 혈안이 돼 있다. 심지어 검찰은 법원의 결정마저 아랑곳하지 않고 3000여 쪽의 수사기록을 공개하지 않고 버티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정부는 과연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용산 참사를 외면할 것인가. 그저 집회·시위만 막으면서 세월이 흐르길 기다리면 세입자들과 유족들이 지쳐서 떨어져나갈 것으로 생각하는가. 만약 그런 인식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면 ‘정부’라는 이름을 붙이기조차 민망하다. 정부는 더 늦기 전에 희생자들의 명예회복, 이주보상비 문제 등 실타래처럼 얽힌 사태 해결에 발벗고 나서야 한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용산의 죽음을 응시하고 있음을 정부는 결코 잊지 않았으면 한다.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