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4.29 22:05
수정 : 2009.04.29 22:05
사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의 국회 비하 발언을 접하면서 먼저 떠오르는 것은 신독(愼獨)이라는 말이다. ‘혼자 있을 때 삼가고 경계함’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혼자 있을 때 삼가느냐의 여부는 예부터 군자와 소인배를 가르는 중요한 기준의 하나로 여겨졌다. 그런 기준에 비춰 보면, 자신의 발언을 남이 듣지 않는다고 여기고 야당 의원에게 욕설을 한 유 장관은 전형적인 소인배인 셈이다. “마이크가 켜져 있는 줄 모르고 혼잣말로 한 것”이라는 해명부터가 우습기 짝이 없다. 마이크가 켜져 있으면 공손한 척하고, 꺼져 있으면 아무 말이나 해도 된다는 뜻인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부지불식간에 입 밖으로 나온 말을 보면 그 사람의 수준과 품격, 평소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유 장관의 발언은 그런 점에서 거의 시정잡배 수준이다. “미친×” 따위의 거친 언사가 평생 외교관으로 잔뼈가 굵은 사람의 입에서 나왔다는 것부터가 무척 실망스럽다. ‘안 보는 데서는 나라님 욕도 한다’는 말도 있긴 하지만, 국무위원으로서는 절대 해서는 안 될 말이었다.
야당 의원에 대한 욕설도 문제지만 더 심각한 발언은 “이거 기본적으로 없애버려야 해”라는 대목이다. 유 장관은 그 말이 ‘몸싸움’을 없애야 된다는 뜻이었다고 변명하지만 별로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일반적인 언어 사용법상 ‘몸싸움을 기본적으로 없애버리자’는 말이 자연스럽다고 느끼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 말은 누가 봐도 국회 내지는 국회 상임위의 심의 절차 등을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국회를 모독하고 민주주의를 무시한 발언이라고 해석해도 크게 무리가 아니다. 유 장관이 당사자인 천정배 의원에게 개인적으로 사과를 하는 선에서 어물쩍 넘어가기 힘든 이유다.
유 장관의 이번 발언은 근본적으로 새 정부 출범 이후 잇따른 정부 쪽 인사들의 국회 경시 발언과 맥이 닿아 있다. 지난해 국정감사장에서 나온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욕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의 ‘깽판 국회’ 발언 등 잊을 만하면 장차관들의 국회 경시 태도가 물의를 빚어왔다. 하기야 한승수 국무총리부터가 쇠고기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개의 5분 전에야 불참을 통보할 정도였으니 국무위원들이 그 본을 따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정부 각료들의 대오각성을 촉구한다.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