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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4.30 19:33 수정 : 2009.04.30 19:33

사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어제 대검찰청 청사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재임 중 뇌물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 피의자 신분이다. 전직 대통령의 검찰 출석은 1995년 노태우·전두환 전 대통령에 이어 세 번째지만, 참담함은 결코 덜하지 않다. 오히려 더 쓰리고 아프다. 우리 정치가 아직도 비리 사슬을 말끔히 끊어내지 못했다는 자괴감, 도덕성과 개혁을 내세워온 한 정치인의 뒷모습을 목격한 배신감 탓이다. 당사자인 노 전 대통령은 면목이 없고 실망시켜 죄송하다고 말했지만, 국민의 실망은 그 이상이다. 희망과 기대로 정치를 바로 세울 힘과 자신감을 찾는 일은 이제 그로 인해 더 어려워졌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노 전 대통령은 그 책임을 모면하려 하지 말아야 한다. 그는 자신의 법적 책임을 대부분 부인해왔다.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한테서 아내와 아들, 측근이 받거나 챙겼다는 거액에 대해 모두 재임 중에는 몰랐다고 주장했다. 실제 그런 주장이 사실일 수도 있고, 또 법적으로는 그렇게 방어할 수도 있겠다. 설령 그렇다 해도 그런 주장만으론 국민의 의심을 달래지 못한다. 돈을 준 쪽이 노 전 대통령을 보고 줬다고 하고 가족이나 측근이 별 죄의식 없이 돈을 받았다면, 그렇게 되도록 만든 노 전 대통령에게 잘못이 없을 수 없다. 당사자들이야 서로 가족 같은 사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이런저런 이권과 편의가 오가는 비리 구조였을 뿐이다. 노 전 대통령에겐 법적 혐의 말고도 개혁을 말하면서 이런 구태에 안주한 책임이 있다.

노 전 대통령이 스스로 도덕적 파산을 선언한 것도 그런 책임의 일단을 받아들인 때문일 것이다. 나아가, 그의 혐의가 확인된다면 그에 맞는 법적 책임을 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러나 그의 잘못이 대놓고 직접 수천억원의 비자금을 챙겼던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잘못과 동일시될 순 없다. 검찰도 자식이나 아내가 받은 돈을 노 전 대통령이 몰랐을 리 있겠느냐는 정황만으로 법적 책임을 추궁해선 안 된다. 그런 논리는 아들들이 비리 혐의로 구속됐던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에겐 적용되지 않았다. 그렇잖아도 검찰 수사에 대해선 보복 아니냐는 따위의 곱지 않은 눈길이 있는 터다. 역사의 피의자로 져야 할 책임과는 별도로, 법적 책임은 엄정한 사실과 증거로만 묻는 게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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