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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의 ‘아마추어리즘’ |
어제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이 전날보다 5.7원이나 떨어진 달러당 999.5원으로 출발하며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 박승 한국은행 총재가 전날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와 한 회견에서 “외환 보유액이 더 늘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고 한 말이 발단이었다. 이 신문 인터넷판은 이 말을 근거로 “한국이 원화 절상을 막기 위해 시장 개입에 나서지 않을 것임을 암시했다”고 보도했다. 밤에 나온 이 보도는 환율을 주저앉게 했다. 한은은 와전된 것이라고 해명했고, 한덕수 경제부총리도 “박 총재의 외환 보유액 관련 발언은 외환시장 정책과 무관하다”고 진화에 나섰다. 원-달러 환율은 곧 1000원대를 회복했다.
‘해프닝’으로 보기엔 결코 가볍지 않다. 파이낸셜타임스의 해석은 무리한 게 아니었다. 경상수지 흑자로 달러가 넘치는데 외환 보유액을 늘리지 않겠다면, 시장에서 달러를 사들이지 않겠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박 총재의 말이 외환 보유액 추이를 단순히 전망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중앙은행 총재의 말을 그냥 넘길 외환시장 관계자는 거의 없다. 특히 외환 당국자는 환율과 관련된 말에는 극도로 신중해야 한다. 환율 관리는 시장과 벌이는 포커게임과 같다는 말도 있다. ‘패’를 보여주곤 이길 수 없다. 한은의 해명이 있었지만, 시장에선 외환 당국이 속내를 드러낸 것으로 보고 있다.
게다가 지금은 외환시장의 눈이 한은에 쏠린 때다. 정부 쪽 ‘실탄’인 외환시장 안정용 국고채 발행 여분이 바닥나 환율 관리가 사실상 한은에 맡겨져 있다. 지난 2월에도 한은은 국회에서 외환 보유 통화 다변화를 시사하는 보고를 해 국제 외환시장을 출렁이게 했다. 엄중한 실수가 반복되는 데 대해 해명하기에 앞서 깊은 자성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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