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5.01 21:24
수정 : 2009.05.01 21:24
사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엊그제 포괄적 뇌물수수의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이로써 검찰은 지난 3월 중순 박연차씨의 정·관계 로비사건을 본격 수사하기 시작한 이래 가장 큰 산을 넘었다.
검찰은 조사 결과를 검토한 뒤 다음주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한다. 노 전 대통령 쪽은 조사가 끝난 뒤 검찰이 진술자료 외에 단 하나의 증거도 내놓지 못했다고 말했지만, 검찰은 조사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뒀고 다시 소환할 계획은 없다고 설명했다. 노 전 대통령의 혐의를 입증할 자신이 있다는 태도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 소환 이전부터 검찰 수뇌부, 정치권, 일부 언론에선 국가 체면 손상,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 등의 이유로 불구속 기소, 심지어 기소유예 주장까지 나온다. 분명한 것은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 여부는 엄격한 법률 판단에 따라야지 정치적 판단을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검찰이 정치 판단을 앞세운다면 한달 반 동안 노 전 대통령과 그 가족을 상대로 벌인 수사가 한낱 ‘노무현 죽이기’ 정치쇼에 불과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 될 것이다.
검찰은 이번 수사를 하면서 ‘죽은 권력엔 강하고 살아 있는 권력에 약하다’는 조롱을 받았다. 맞는 면도 있지만 억울한 면도 있을 것이다. 검찰이 국민의 신뢰를 얻는 길은 앞으로 살아 있는 권력을 상대로 철저한 수사를 벌이는 것밖에 없다. 박연차씨 세무조사와 관련해 연루설이 끊이지 않는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의원, 박씨 세무조사 대책회의를 하고 돈까지 받았다는 대통령의 친구 천신일 고려대교우회 회장과 이종찬 전 청와대 민정수석, 수사 본격화의 시기에 맞춰 외국으로 나간 한상률 전 국세청장 등이 우선적인 조사 대상이 되어야 한다. 또한 박씨한테서 돈을 받은 것으로 전해지는 전·현직 검사들에 대해선 다른 누구보다 엄격하게 조사해 처벌해야 한다. 산 권력과 제 식구만 봐준다면 검찰은 정치보복 청부업자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