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5.05 21:28
수정 : 2009.05.05 21:28
사설
엊그제 경찰의 과잉 진압·연행을 항의하는 기자회견에서 인권단체 활동가들이 무더기로 연행됐는데 그 이유가 놀랍다. 이들이 “경찰청장 사퇴하라”, “경찰은 폭력진압 중단하라” 따위의 정치적 구호를 외쳤고, 이는 경찰의 정당한 공무집행에 항의하는 불법집회였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이제 거리에서 경찰만 비판해도 불법으로 체포되는 세상이 온 것이다. 경찰의 월권이 도를 넘었다.
민주사회에서 집회 및 시위의 자유를 보호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우월적 지위와 힘을 가진 자에 의해 권리 행사가 침해되거나 제한될 때 이를 알리고 바로잡을 수 있는 수단은 많지 않다. 특히 권력이 그런 일을 저질렀을 경우엔 더욱 그렇다. 의지할 수 있는 건 집회나 시위뿐이다. 헌법이 이에 대한 제한을 엄격히 규제하고 있는 건 이 때문이다. 법원이 지난해 현행 집시법의 야간 옥외집회 금지 조항에 대해 위헌심판을 제청하고, 엊그제 다시 형법의 일반교통방해죄에 대해 위헌제청을 한 것도 이 조항들이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멋대로 제한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물론 비민주적 권력에게 집회와 시위는 골칫덩이다. 그래서 이를 제약하기 위해 온갖 수단, 심지어 초헌법적 조처까지 동원했다. 대표적인 게 박정희 정권 때의 긴급조치다. 긴급조치는 유신헌법에 대한 비방은 물론 정부에 대한 일체의 비판을 불허했다. 이를 위한 집회와 시위는 가혹하게 처벌했다. 그래서 학생들은 단 몇 분간의 규탄시위를 위해 투옥을 각오해야 했다. 전두환 정권 역시 마찬가지다. 집회와 시위는 정부의 허가사항이었다. 관제 데모만 가능했다. 생존권을 위한 집회마저 불법이었다.
지난해 촛불집회 이후 멋대로 불허하고 진압해온 이 정권도 정부 비판 집회를 봉쇄하기 위한 제도 개악에 착수했다. 한나라당이 집회 중 마스크를 써서도 안 되고, 경찰이 시민의 지문을 마음대로 채취하고 임의동행할 수 있도록 하며, 시위에 대한 집단소송을 허용하도록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강부자’를 위한 정책이나 공권력의 폭력, 혹은 자본의 횡포에 대해 비판하면 언제든 연행하고 저항하면 형사처벌하고, 벌금까지 물릴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그건 공권력이라는 맹견의 목줄을 풀어놓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 결과는 박정희·전두환 정권의 비극적 전철이 될 것임을 왜 모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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