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5.06 21:56
수정 : 2009.05.06 23:37
사설
이명박 대통령과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가 어제 4·29 재보궐선거 이후 처음으로 만났다. 한나라당이 재보궐선거에서 0 대 5로 참패한 뒤 소장의원을 중심으로 국정운영 기조의 쇄신, 인적 개편, 당 화합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가운데 이뤄진 만남이어서 그 결과에 큰 관심이 쏠렸다. 하지만 이번에도 ‘혹시나’ 하는 기대를 했다가 ‘역시나’ 하는 실망으로 끝났다.
이 대통령과 박 대표는 이번 재보선에서 나타난 민심을 ‘쇄신과 단합’으로 압축했다. 쇄신이 부평을 국회의원 재선거와 시흥시장 선거에서 나타난 ‘부자 중심, 밀어붙이기식 일방적 국정운영’에 대한 심판을 염두에 둔 해법이라고 한다면, 단합은 친이·친박 사이의 갈등이 표출된 경주 국회의원 재선거에 대한 대책이라는 성격을 띤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밝힌 회동 결과를 뜯어보면, 쇄신과 관련한 내용은 보이지 않고 단합, 즉 계파 갈등 해소 문제에만 매달렸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마치 진단은 제대로 해놓고 처방은 엉뚱하게 내린 꼴이다. 박희태 대표가 “당의 단합을 위해서는 계파를 뛰어넘는 인사가 필요하다”고 하자, 이 대통령이 “여당은 원래 계파 색을 너무 드러내지 않는 게 좋다”고 응수한 것이 대표적이다.
박 대표는 이번 회동에서 국정운영의 쇄신과 정부·청와대의 인적 개편을 요구하는 당내 목소리를 전달조차 하지 않았다. ‘청와대 밑의 당’이라는 구조적 한계를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이런 상황에선 박 대표가 앞으로 당 쇄신위에서 검토해 결정하겠다고 밝힌 당청 소통기구가 만들어진다고 해도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청와대가 불러주고 지시하는 대로만 당이 움직인다면 소통기구가 수백 개 만들어진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지금 청와대와 한나라당 사이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소통을 위한 하드웨어를 새로 만드는 게 아니다. 당이 의정활동을 하면서 얻은 밑바닥 민심을 여과 없이 청와대로 전달하고, 청와대는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여 정책에 반영하는 소프트웨어의 가동이 훨씬 더 중요하다. 개혁성향의 초선 모임인 ‘민본21’이나 친이 의원 모임인 ‘함께 내일로’가 현 지도부 중심의 쇄신이 아니라 전권을 가진 쇄신위 중심의 강도 높은 쇄신책을 요구하고 나선 것은 이-박 회동의 한계를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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