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5.07 21:29
수정 : 2009.05.07 21:29
사설
검찰이 ‘용산 참사’ 수사기록 1만여 쪽 가운데 3000여 쪽의 공개를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 이 기록 안에 어떤 내용이 들어 있기에 검찰은 법원의 결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공개를 꺼리고 있는가. 이런 의문에 대한 해답의 단서가 그제 열린 재판에서 나왔다. 검찰이 뒤늦게 변호인단에 공개한 일부 기록에 공소사실과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돼 있음이 드러난 것이다.
용산 참사와 관련해 그동안 쟁점이 돼온 것은 크게 두 가지다. 철거민들이 농성을 시작한 지 10시간도 안 돼 경찰이 특공대 투입을 결정할 만큼 상황이 긴박했느냐, 그리고 정확한 발화지점과 원인 등 사건의 진상이 무엇이냐다. 그런데 이번에 공개된 기록을 보면, 경찰특공대장은 “(농성자들이 화염병 등을) 의도적으로 도로 쪽으로 던지지는 않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나와 있다. “점거농성 시작 이후 줄곧 화염병과 골프공 투척이 난무했고, 인도와 차도를 무차별 공격해 도심 테러에 준하는 상황이었다”는 검찰의 수사 발표와는 다른 대목이다. 또 사건 당시 망루 내부 상황과 발화지점 등을 두고도 공소사실과 다른 경찰특공대원의 진술이 발견됐다고 한다.
공소사실과 모순되는 경찰 관계자들의 이런 진술은 범상히 보아 넘길 수가 없다. 애초부터 검찰의 수사 결과를 두고는 “철거민들에게 죄를 덮어씌운 엉터리 수사”라는 비판이 무성했다. 참사를 부른 망루 화재에 대해서도 검찰은 “철거민들이 뿌린 시너에 화염병 불이 번진 탓”이라고만 ‘추정’했을 뿐 진상을 제대로 밝혀내지 못했다. 아직 공개되지 않은 기록에는 검찰 수사 결과를 뒤집을 수 있는 폭발력 있는 내용이 들어 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검찰이 이번에 수사기록을 일부 내놓은 것도 자발적이지 않다. 법원이 비공개 기록에 대해서는 증거신청을 하지 못하도록 한 형사소송법을 들이밀며 압박하자 마지못해 400여 쪽을 공개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수사기록 비공개에 대해 “경찰 기동대원들을 수백명씩이나 조사했는데 기록이 모두 공개돼 이들이 증인으로 신청되면 재판 진행이 어려워진다”는 등의 이유를 대지만 전혀 설득력이 없다. 그런 문제는 법원이 알아서 판단할 일이지, 결코 검찰이 걱정할 일이 아니다. 용산 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해 검찰은 수사기록 공개를 더 늦춰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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