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5.07 21:32
수정 : 2009.05.07 21:32
사설
내년 1월부터 발행부수공사(ABC)의 공사를 받은 신문과 잡지에만 정부 광고를 싣겠다는 문화체육관광부(문화부)의 그제 발표는 황당하기 짝이 없다. 업계 의견 수렴도 없이 극심한 부작용이 예상되는 정책을 반년 남짓한 기간 뒤에 시행하겠다고 불쑥 발표한 것이다.
문화부는 이런 정책이 신문·잡지 광고 단가가 시장 원리에 따라 결정되게 하기 위한 것이라며 “내년에 정부 광고를 받으려면 올 하반기에 부수 검증을 받거나 내년 상반기 중 부수 검증을 수행한다는 약속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부수 검증 기준을 현행 ‘정가 또는 80% 이상 수금’에서 ‘50% 이상 수금’으로 바꾸기로 한 것을 개선방안이라고 내놨다.
인쇄매체의 발행부수를 공개해 투명한 시장을 만들자는 데 반대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그동안 부수 공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이유를 파악하는 데서 문제를 풀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자전거와 상품권이 난무하는 등 한국 신문시장의 혼탁상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지난 정부는 신문고시 등을 통해 나름대로 시장질서를 잡고자 노력하는 시늉이라도 했지만 이명박 정부는 자율규제란 허울 아래 불법판촉을 방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검증 기준을 50% 이상 수금으로 바꾼다면 유가부수를 부풀리기 위한 온갖 불법이 자행될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발행부수공사의 공신력도 문제다. 한국에이비시(ABC)협회는 조사 수치를 조작해 특정 신문의 부수를 늘리는 부정을 저지른 사실이 밝혀졌다. 이후 이 협회는 사실상 유명무실한 상태에 있으며 어떤 개선조처도 없었다. 이런 상태에서 어떻게 협회를 믿고 공사를 받을 수 있겠는가.
발행부수와 광고를 직접 연계하겠다는 정부의 발상은 본말이 전도됐다. 기업이야 시장 원리에 따라 광고를 해야겠지만, 정부는 언론의 다양성을 진작할 책임을 진다. 단순히 부수의 많고 적음을 광고와 연계한다면, 여론 다양성을 위축시키고 물량공세를 펼 수 있는 시장지배적 사업자만 강화시킬 위험이 있다. 발행부수뿐만 아니라 열독률, 독자 특성 조사 등을 고려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는 한 발행부수 공사와 정부 광고를 연계하겠다는 발상은 위험천만하다. 부수 공개를 조기에 실현하려면 공정한 판매시장 질서 구축과 공사 기관의 신뢰성 회복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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