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5.08 19:29
수정 : 2009.05.08 19:29
사설
신영철 대법관이 서울중앙지방법원장 때 부적절하게 재판에 관여했다고 볼 수 있다는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의 결정이 나왔다. 윤리위는 어제 신 대법관에게 경고 또는 주의촉구 등의 조처를 취할 것을 대법원장에게 권고했다.
윤리위의 이번 결정에는 아쉬운 점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재판의 독립을 훼손한 이번 사안의 심각성에 견줘 너무 가벼운 처분이다. 이미 대법원 진상조사단이 신 대법관의 행위를 재판 개입으로 인정하고, 6년 만에 열린 전국법관회의도 재판 독립성 침해라고 일치된 의견을 모은 터다. 윤리위가 “재판 관여로 인식되거나 오해될 수 있는 부적절한 행위”라면서도 징계 대신 경고 등을 권고하는 데 그친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소극적 태도다. 스스로 정의한 사법행정권의 한계를 벗어나는 신 대법관의 행위를 굳이 사법행정권 행사로 보려 하는 등 논리적 모순도 여럿 눈에 띈다. 이번 일을 재판 독립성의 중대 위기로 본 법원의 전반적 인식에 크게 못미치는 수준이다.
윤리위는 그럼에도 신 대법관이 부적절한 재판 관여 행위를 저질렀다는 점은 재확인했다. 대법원의 공식 조사와 후배 법관들의 의견 표명에 이어 외부 인사들이 포함된 윤리위에서까지 같은 결론이 내려졌으니, 신 대법관으로서도 더는 변명할 여지가 없어졌다. 윤리위는 또 ‘재판 내용이나 절차 진행에 대해 직간접으로 구체적 지시를 하거나, 특정 방향이나 방법으로 직무를 처리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사법행정권의 한계를 분명히했다. 신 대법관의 행위가 문제된 것도 바로 이런 대목이었다. 이에 더해 재판의 독립을 침해하는 행위를 시정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
신 대법관은 자신에게서 비롯된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대법관이 징계는 물론 경고나 주의 촉구의 대상이 된 것도 우리 현대 사법사에선 처음 있는 일이다. 윤리위나 징계위 등의 절차가 대법관에 적용된 것부터가 사법부의 부끄러움이다. 한 치의 허물도 용납되지 말아야 할 최고법원의 법관이 일반 범죄 피의자처럼 유무죄를 다투는 듯한 모양새도 꼴사납다. 더구나 신 대법관의 재판 관여 행위는 헌법상 법관 독립을 위협하는 일이 될 수 있다. 헌법 가치 훼손과 법원 권위 추락을 막기 위해서라도, 추한 모습을 그만 거두고 물러나는 게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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