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5.13 23:19
수정 : 2009.05.13 23:19
사설
이용훈 대법원장이 어제 신영철 대법관의 재판 관여 행위에 대해 엄중 경고의 뜻을 밝혔다. 유감 표시와 함께 재판 독립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다짐도 했다. 사퇴 요구에 침묵하던 신 대법관도 “불편과 심려를 끼쳐 송구하다”는 사과문을 내놓았다. 하지만 그저 말로만 그러는 것으로 보일 뿐이다. 신 대법관은 여전히 법원 안팎의 사퇴 요구를 못 들은 양 뭉개고 있다. 이 대법원장도 명백한 징계 사유에 해당하는 신 대법관에 대한 징계를 외면했다. 이쯤에서 대충 마무리하자는 뜻이겠지만, 그렇게 끝낼 일은 아니다.
이미 사법파동의 모습은 완연하다. 오늘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회의가 소집됐고, 다른 법원에서도 판사회의를 소집하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한다. 법관들은 이제 공식 기구를 통해 신 대법관의 사퇴를 요구할 태세다. 헌법상 재판의 독립을 보장할 실질적 방안을 마련하려는 움직임도 이어질 것이다. 그 자체로 보면 우리 사법부가 또 한 번 아픔 속에서 발전하는 계기가 될 수 있지만, 그만큼의 갈등과 사법부의 권위 훼손은 각오해야 한다. 그 책임은 온전히 신 대법관과 이 대법원장에게 있다.
지금이라도 해결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신 대법관이 자진 사퇴하면 된다. 그는 이미 명예롭게 사퇴할 때를 놓쳤다. 후배 법관들까지 대놓고 사퇴를 촉구하는데도 더 버티려 하면 사법부의 갈등과 분열은 불 보듯 뻔하다. 자칫 법치주의의 근간인 재판의 독립성, 사법부의 안정까지 흔들리게 된다. 스스로는 물론 법원까지 이렇게 더럽히고 찢어발기면서 오욕의 자리를 고집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대법원장의 잘못도 있다. 신 대법관의 행위가 대법원장의 뜻을 받든 게 아니냐는 의혹은 이미 있었던 터다. 사실이라면 그 역시 법원을 정치적으로 오염시킨 책임을 져야 한다. 그게 아니라도, 이 대법원장이 이번 일로 인한 대법원의 권위와 위상 훼손을 막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도 의문이다. 신 대법관의 잘못이 분명하다면 마땅히 그의 자진 사퇴를 설득하거나, 법관징계법에 따라 그에 대한 징계를 청구해야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직무유기다.
헌법상의 재판 독립을 명백히 침해한 이번 일은 마땅히 원칙대로 처리해야 한다. 미리 짠 듯 적당한 절충과 시늉으로 넘어갈 일이 아니다. 그랬다가는 더 큰 화를 자초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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