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5.14 20:45
수정 : 2009.05.14 20:45
사설
박종태 화물연대 광주지부 1지회장의 자살 사건으로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노동권 보장 문제가 노동계의 큰 이슈로 떠올랐다. 그의 안타까운 죽음은 노동기본권을 인정받지 못한 채 법의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는 특수고용 노동자들에 대한 보호대책이 절실함을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의 방침은 오히려 거꾸로 치닫고 있다. 정부가 건설노조·운수노조 등에 “덤프트럭·레미콘 차주들은 노조원 자격이 없으니 노조에서 탈퇴시키라”는 명령을 내리고 이행상황을 보고하라고 한 시한이 오는 23일로 다가왔다. 노동부는 이들 노조가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으면 법외노조로 규정하겠다고 윽박지르고, 노조 쪽은 이달 말 총파업 경고로 맞서면서 노-정 갈등도 고조되고 있다.
우리나라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규모는 거의 100만명에 이른다. 택배기사, 학습지교사, 보험설계사, 레미콘기사, 골프장 경기보조원 등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문제는 말 그대로 ‘특수’하다. 이들은 법률상으로는 개인사업자로 분류되지만 실제로 하는 일이나 사회경제적 조건을 들여다보면 갈 데 없는 노동자들이다. 레미콘 운송노동자들의 예만 보자.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고, 회사의 배차 지시에 따라 움직여야 하며, 현장의 업무량에 따라 조기출근을 하거나 잔업을 밥 먹듯이 해야 한다. 회사의 승낙 없이는 레미콘 차량의 회사 마크나 도색도 함부로 바꾸지 못한다. 경우는 조금씩 다르지만 모든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처지가 똑같다. 쉽게 말해 이들은 자기 판단에 따라 사업방식을 결정하고 고객을 자유롭게 선택하는 독립적 자영업자와는 거리가 멀다.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이런 특수성 때문에 이들의 노동기본권을 인정하자는 주장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실제로 근로기준법·노동조합법 개정안도 간간이 제출됐으나 정치권의 무관심과 정부의 눈치보기로 허송세월만 하다가 오늘에 이르고 말았다. 하지만 이들의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고용불안 문제를 더는 외면하고 방치할 수 없는 시점이 됐다. 정부의 근본적인 책무는 다름아닌 ‘보호’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적절한 보호를 제공하는 것이다. 지금 당장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노동법상의 보호다. 이런 간단한 원리를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된다. 제2, 제3의 박종태씨와 같은 불행한 사태가 생기기를 정부는 진정 바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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