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5.20 22:29
수정 : 2009.05.20 22:29
사설
정부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내민 대화 제의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불법시위 강경 대책만 내놨다. 갈등을 조정해 사회 안정을 꾀해야 할 정부가 거꾸로 갈등을 부추기고 나선 셈이다. 정부는 나아가 모든 갈등을 힘으로 눌러 잠재우겠다는 방침을 공공연히 밝혔다. ‘신공안통치’ 또는 ‘신긴급조치’ 시대가 왔다는 얘기가 나오는 게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어제 정부는 지난 주말 민주노총과 화물연대의 집회와 관련한 치안관계장관 회의를 열어 전원 검거, 엄중 처벌, 민사소송 등의 초강경 대책을 되풀이했다. 민주노총이 고심 끝에 내놓은 비정규직 고용보장 등 5개 항의 교섭 요구엔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제 이명박 대통령이 화물연대의 ‘죽창’ 시위를 언급하며 엄정 대처를 지시한 데 따른 강경몰이다.
불법시위가 사라져야 한다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불법시위를 따지기 전에 평화시위를 보장하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경찰은 신고제로 돼 있는 집회를 사실상 허가제로 운용하면서, 자신들이 임의로 색깔을 칠해 놓은 단체의 집회를 원천봉쇄하고 있다. 또 평화적인 거리행진에도 무리하게 공격적으로 대응하면서 충돌을 불러오고 있다. 지난 주말 대전의 과격시위는 이런 과정에서 나온 불상사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사회적 갈등을 다루는 정부의 구태의연한 방식이다. 정부는 갈등의 근본 원인을 치유하려고 하기보다는 터져나올 수밖에 없는 사회적 불만을 경찰·검찰·행정력을 총동원해 꽉 틀어막으려고 한다. 이런 식의 억압적 대책이 효과도 없고 국력만 낭비한다는 사실은 수십년에 걸친 민주화운동의 역사가 잘 보여준다.
정부는 이제라도 ‘밀어붙이기식 법치’를 거둬들이고 ‘민심과 소통하며 갈등을 치유하는 정치’를 되살려야 한다. 이는 4·29 재보궐선거에서 나타난 국민의 뜻이기도 하다. 그 첫걸음은 장관들이 ‘말 듣지 않는 사람을 모두 잡아넣겠다’고 협박만 할 게 아니라, 사람들이 왜 거리로 나오고 거기서 무슨 소리가 나오는지 그리고 해결책은 무엇인지를 살피러 현장으로 달려가는 것이다. 민주노총이 1998년 경제위기 이후 처음으로 사회 전반의 경제·노동 정책을 놓고 대정부 교섭안을 낸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정부는 이런 소중한 기회를 놓치지 말고 갈등의 근본 치유에 나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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