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9.05.24 22:21 수정 : 2009.05.24 22:21

사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의 물결이 전국을 뒤덮고 있다. 빈소가 마련된 봉하마을뿐 아니다. 슬픔에 겨운 흐느낌과 호곡은 곳곳에서 울려퍼진다. 환하게 웃고 있는 노 전 대통령의 사진 앞에서 울먹이는 사람들의 모습은 처연하다.

추모 열기는 단순히 불행하게 생을 마감한 한 전직 대통령을 떠나보내는 슬픔과 연민의 표시만은 아닌 듯하다. 그 속에는 이런 비극을 불러온 이 땅의 현실에 대한 절망과 분노가 깃들어 있다. 추모 행렬에 끼어 있는 이름없는 시민들의 말이 이를 증명한다. “노 전 대통령의 공과를 보는 눈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는 분명히 기득권층의 오만과 부패를 바로잡으려고 노력했다.” “그는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섰던 사람이었다.” 기득권층이 득세하고 사회적 약자들이 뒷전으로 물러나는 현실, 민주주의와 인권이 후퇴하고, 권력이 오만하게 독주하는 상황 속에서 켜켜이 쌓인 반감과 울분이 통곡과 오열 속에는 녹아 있다. 지난해 ‘촛불’이 단순히 광우병 위험에 대한 공포심의 발로만이 아니었듯이, 추모 행렬의 행간에 숨어 있는 의미 역시 매우 중층적이고 복합적이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이 많은 것도, 지금이 후세에 중요하게 기록될 역사의 한순간임을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추모 민심이 이런데도 경찰은 오히려 추모 행렬을 막기에만 급급하는 치졸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분향소 부근 도로에 겹겹이 차벽을 치고 시민들을 통제하는 것도 모자라 근처에 물대포까지 대기시켜 놓았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이것이 이명박 대통령이 지시한 ‘전직 대통령에 대한 정중한 예우’인지 묻고 싶다. 게다가 보수언론 등에서는 벌써부터 이번 사태의 ‘정치적 이용 가능성’을 경계하고 나섰다. “노 전 대통령의 비극을 국민 분열의 재료로 이용하려는 책동은 경계해야 할 일”이라는 따위가 그것이다. 과거에도 수없이 들어봤던 상투적인 훈계가 다시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사건은 그 충격의 강도만큼이나 작지 않은 소용돌이가 불가피해 보인다. 문제는 그 후폭풍에 우리 사회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다. 긴장과 갈등을 피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면, 그 소용돌이를 소모적으로 흘러가게 할 게 아니라 사회가 한 단계 성숙해지는 계기로 삼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책임은 누구보다 현 집권층에 있다. 물론 야권도 이를 정쟁의 ‘호재’로 삼으려 해서는 안 되지만, 현 사태를 풀어나갈 궁극적 책무는 정부여당의 몫이다. 후퇴하는 민주주의를 다시 살려내는 것은 물론, 정권의 시녀로 되돌아간 검찰의 개혁, 소외된 이웃을 보듬어 무너진 공동체를 일으켜세우는 작업 등 노 전 대통령이 죽음으로 던진 과제는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다.

현 집권층은 우선 추모 민심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빈소에 조문이나 하고, 조화나 보낸 뒤 시일이 흘러 추모 열기가 식기를 기다리겠다는 생각이라면 곤란하다. 더욱이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이 ‘제2의 촛불’로 번질까 두려워 시민들의 추모 행사를 불법 집회로 몰아 통제하고 나선다면 불행을 자초하는 일이 될 것이다. 정부는 분향소 앞에 늘어선 시민들의 육성에 겸허히 귀를 기울이기 바란다.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