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5.25 21:21
수정 : 2009.05.25 21:21
사설
북한이 어제 오전 지하 핵실험을 강행했다. 장거리 로켓 발사, 핵 불능화 작업 중단 및 폐연료봉 재처리 재개 등 지난 몇 달 사이 강화해온 벼랑끝 전술의 고비다. 상황 변화가 없다면 추가 도발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번 핵실험이 의외의 것은 아니다. 북한은 지난달 29일 외무성 대변인 성명에서,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 경수로발전소 건설 등을 예고했다. 당시 북한은 유엔 안보리가 로켓 발사를 비난하는 의장성명을 낸 데 대해 즉각 사죄하라는 비현실적 조건을 내걸었다. 핵실험 강행을 위한 억지 명분을 만든 셈이다. 그렇더라도 어제 핵실험은 갑작스럽다. 무엇보다 시기가 생각보다 이르다. 전문가들은 대개 6~7월 이후로 예상해왔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일치된 경고를 무시하고 핵실험을 한 이상 제재 논의는 불가피하다. 이번 핵실험은 2006년 10월 1차 핵실험 이후 유엔 안보리가 채택한 결의안 1718호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결의안은 각종 대북 제재를 명시하면서 추가 핵실험을 하지 말 것 등을 북한에 요구했다. 북한은 이를 잘 알면서도 핵실험을 강행했다. 응분의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하다.
사태가 왜 여기까지 왔는지를 진지하게 따져봐야 할 때다. 버락 오바마 미국 정부는 대북 포괄적 직접협상이라는 큰 틀을 잡아놓고도 구체적 방안 마련에서 늑장을 부렸다. 그 과정에서 북한의 로켓 발사가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고는 하지만, 미국의 안이한 태도가 상황 악화에 일조한 건 사실이다. 특히 미국 정부 안팎의 여러 인사들은 ‘북한이 카드를 다 쓰고 나면 대화에 나설 것’이라는 이른바 ‘선의의 무시’ 태도를 보였다. 핵실험을 막으려 하지 않고 기정사실화한 것이다.
북한이 공언한 ‘핵 능력 강화’의 주요 목표 가운데 하나가 대외 협상력 제고에 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북한 핵문제를 근본적으로 풀기 위한 협상이 그냥 이뤄지지는 않는다. 적절한 협상 틀이 필요하고 관련국들의 확실한 의지가 담겨야 한다. 그런 준비 없는 선의의 무시 정책은 협상 출발 자체를 어렵게 만든다. 무한정 기다려도 좋을 정도로 시간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상황 악화 조처가 이어지면 되돌리기가 그만큼 쉽지 않다.
북한 핵문제 해결 노력은 이제 분명한 전환점에 왔다. 대북 압박과 협상을 병행해야 한다는 공허한 수사가 아니라 구체적인 협상안을 갖고 속도감 있게 움직여야 한다. 특히 다음달 중순 정상회담을 앞둔 우리나라와 미국의 노력이 중요하다. 미국은 빨리 새 대북정책을 마무리한 뒤 행동에 나서고, 우리나라는 핵문제 해결 노력과 남북관계에서 주도적 구실을 되찾아야 한다. 지금처럼 사태 악화를 방치해서는 모두 피해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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