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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5.26 21:46 수정 : 2009.05.26 21:46

사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열기가 온 나라로 퍼지고 그를 죽음으로 몰아간 현 정권에 대한 분노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화해와 통합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주장이 쏟아지고 있다. 민심에 겁먹은 한나라당이나 현 정권 인사들은 낮은 톤으로 이를 주장하는 반면, 보수언론은 한층 적극적으로 이를 설파한다. “그분이 다 안고 가셨는데 이젠 싸움 그만해야”라는 ‘자갈치 아지매’의 말을 1면 통단 제목으로 뽑는가 하면, 노 전 대통령이 편히 잠들 수 있게 하자거나 국민장이 엄수되도록 각계가 협조해야 한다며 한결같이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고 한 노 전 대통령의 유서 내용을 강조한다.

어느 누구도 화해와 통합에 반대하지 않는다. 노 전 대통령도 자신의 죽음이 또다른 갈등과 혼란을 야기하는 것을 원치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화해와 통합 주장에선 진정성을 찾기 어렵다는 데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진정한 화해가 가능하려면 가해자들의 진솔한 사과가 선행돼야 한다. 흑백차별 정책으로 극심한 분열과 갈등을 겪었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이 불행한 역사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가해자들의 진솔한 사과와 피해자들의 용서를 가능하게 했던 ‘진실·화해위원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가해자들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은 채 피해자에게 화해만 요구하는 것은 부도덕하다.

독일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의 지적처럼,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은 현 정권의 ‘몰이 사냥’을 견디다 못한 선택이었다. 촛불에 덴 정권이 그를 배후로 의심해 정치적 보복에 나섰고, 그 하수인인 검찰은 내부에서조차 범죄 성립이 어려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로 무리한 수사를 강행했다. 보수언론은 여과 없이 혐의사실을 공표하며 그를 구석으로 밀어붙였다. 외국 언론의 눈에조차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그들의 태도는 증오로 비칠 정도였다. 그런데도 그들은 오늘의 비극을 낳은 자신들의 책임에 대해선 한마디도 않은 채 ‘근거 없이 검찰 책임론을 운위하거나 정당한 보도를 비판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한다.

경제위기와 북한 핵위기 속에서 노 전 대통령의 서거라는 비극을 맞은 우리 사회가 분열을 극복하고 통합을 이루는 것은 긴요한 일이다. 그러나 통합을 만들어낼 일차적 책임은 현 정권과 집권층 및 그들을 뒷받침하는 보수언론에 있다. 다른 의견을 철저히 배제하고 억압하면서 대결을 조장해온 정책기조를 전면 전환하고, 노 전 대통령의 가족은 물론 용산참사처럼 정권의 폭압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손을 내밀고 위무하는 일이 그 첫걸음이 될 수 있다. 보수언론 역시 스스로를 겸허하게 되돌아보고 반성해야 한다. 그런 통과의례도 없이 화해만 말하는 것은 두려움의 표현이거나 위선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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