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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5.29 20:39 수정 : 2009.05.29 20:39

사설

대법원이 어제 에버랜드 전환사채(CB) 헐값발행 사건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놓았다. 1·2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던 이 회사 전직 대표이사들에 대해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고, 삼성특검에 의해 기소된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같은 부분 혐의에 대해서도 무죄를 확정했다. 에버랜드가 삼성그룹 순환 지배구조의 핵심 고리였으니, 이번 판결은 다른 누구도 아닌 법원이 경영권 불법 승계를 추인하고 도운 게 된다. 사법부 스스로 권위를 부정하고 경제 정의를 내팽개친 부끄러운 판결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이번 판결에서 법원은 실질적 사실관계는 못 본 체하며 억지스런 형식논리만 들이댔다. 에버랜드는 1996년 전환사채를 헐값으로 발행한 뒤, 기존 주주들의 인수청약 포기로 실권된 이 전환사채를 이 전 회장의 자녀 이재용씨 남매에게 대량 배정했다. 대법원은 당시 이사회의 전환사채 발행 결의가 주주배정 방식이었으므로 그 후속조처 역시 같다고 봐야 하며, 그 경우에는 시가보다 낮은 애초 가격으로 배정하더라도 배임죄를 물을 수 없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당시 이사회는 주주배정을 하면서 실권 몫에 대해선 제3자 배정한다고 결의했다. 또 실권주가 발행 대상의 무려 97.06%였으니, 주주배정 방식을 계속해야 한다고 볼 게 아니라 새로 제3자 배정을 하는 것이 법 취지에 맞는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도 에버랜드는 당시 주당 8만5천원인 시가보다 크게 낮은 7700원의 주주배정 방식 가격을 그대로 적용해 이재용씨 등에게 전환사채를 배정했다. 불법이나 특혜라는 의심은 당연하다. 애초 에버랜드 사건에 대한 1·2심 판결도 ‘형식적으로는 주주배정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제3자 배정’이라며 유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은 이런 상식을 무시했다. 제3자 배정으로 인정하면 적정 가격으로 발행해야 할 법적 의무가 생기므로 헐값 배정이 배임이 된다는 점을 의식한 탓으로 볼 수밖에 없다. 당시 기존 주주들의 실권 과정에 비서실이 개입하는 등 온갖 불법과 탈법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음에도 대법원은 ‘기존 주주 스스로의 결정’이라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러니 삼성 봐주기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석연치 않은 행태는 이것만이 아니다. 삼성특검 사건에서 1·2심 법원은 같은 쟁점인 에버랜드 사건 판결은 물론 기존 대법원 판례까지 부정하면서 이 전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번 판결을 앞두고선 소부를 바꿔 결과적으로 담당 대법관이 교체되도록 했다. 6 대 5로 결정된 이번 판결도 법원 안팎의 사퇴 촉구를 무시하고 있는 신영철 대법관이 아니라면 다른 결론이 나왔을 수 있다. 법원이 이런 식의 의심까지 받는다면 사법부의 독립이나 권위는 찾을 길이 없게 된다. 이번과 같은 엄연한 불법 자본거래까지 처벌하지 않는다면 법치주의는 실종될 수밖에 없다. 대법원은 큰 잘못을 저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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