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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집시법 개정안에 대한 인권위 의견 경청해야 |
한나라당 의원들이 국회에 제출한 6건의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의 여러 조항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가 수정 의견을 국회의장 등에게 냈다. “집회·시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할 우려가 있으므로 삭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인권위가 문제 삼은 조항은 복면 등의 금지 규정, 다른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거나 신체에 해를 끼칠 수 있는 기구의 제조·보관·운반 행위에 대한 추가처벌 규정, 통고만으로 영상 촬영을 허용한 규정, 소음 규제 강화 규정과 형벌을 대폭 강화한 부분 등이다. 모두 집회·시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거나 범죄시하는 것들로서, 지난해 이들 법안이 국회에 제출된 이래 시민사회로부터 집중적인 비판을 받은 내용이다.
한나라당은 이런 비판에 귀를 막은 채 이들 조항이 포함된 법안이 통과되도록 당력을 집중해 왔으며, 6월 국회가 열리면 법안 강행처리를 시도할 태세다. 이런 상황에서 인권위가 개정안에 포함된 인권침해적 요소를 지적하고 이의 시정을 요구한 것은 국민의 인권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며, 국회는 인권위의 의견을 경청해 악법이 생산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헌법 21조는 집회·시위의 자유를 기본적 인권으로 규정하고 이의 허가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헌법재판소도 “집회·시위의 자유는 대의 과정을 보완하고 민주주의와 국민주권을 실천한다는 점에서 헌법적 의미를 가진다”고 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이 등장한 이래 집회·시위의 자유는 허울밖에 남지 않았다. 당장 오늘 서울광장에서 열겠다는 6·10 범국민대회가 불허된 것을 비롯해 시민·사회단체들이 5~6월 낸 40여건의 집회 신청이 모두 금지됐다. 집회 금지가 당위가 되고 허용이 예외가 된 이 역설적 현실은 이명박 정권의 기본권 유린 수준이 군사정권 치하의 권위주의 시대로 퇴행했음을 보여준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분출한 민심에는 민주주의를 퇴행시키고 있는 정권에 대한 분노가 담겨 있음을 한나라당도 모르지 않을 터이다. 이런 민심을 안다면 그 분출을 틀어막으려고 할 일이 아니라 물꼬를 터주고 수렴하는 자세를 보일 일이다. 집시법 개악을 포기하는 것은 물론 현행 집시법의 독소조항을 제거하는 일이 그 출발점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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