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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이 대통령의 왜곡된 현실인식과 처방 |
6월 민주항쟁 22돌을 맞아 어제 서울광장에서는 시민사회단체와 야당 등이 주최한 범국민대회가 열렸다. 당국의 집회 불허 방침을 뚫고 우여곡절 끝에 열린 이날 대회에서 광장을 가득 메운 참석자들이 한목소리로 외친 것은 “민주주의 회복”이었다. 6월항쟁 등을 거치며 힘겹게 성취한 민주주의적 가치가 훼손되고, 우리 사회가 다시 과거의 터널로 후진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분노와 안타까움이 넘쳐났다.
같은 날, 이명박 대통령은 전혀 다른 현실인식을 보여주었다. 그는 6월항쟁 기념사에서 너무나도 태연히 “우리나라 민주주의는 누구도 되돌릴 수 없을 만큼 확고하게 뿌리내렸다”고 말했다. 최근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지식인들의 시국선언도 결국 쇠귀에 경 읽기였다. 이 대통령은 이런 지적에 미동조차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오히려 민주화 요구를 “독선적 주장”쯤으로 매도했다. 정부는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하는데, “극단적 투쟁”이나 “집단 이기주의”를 앞세운 세력들이 민주주의를 망치고 있다는 게 그의 현실 진단이다. 한마디로 자가당착이요 적반하장이 아닐 수 없다. 이 대통령의 말마따나, “민주주의가 열어놓은 정치공간에 실용보다는 이념”을 앞세운 게 누구이고 “절제와 타협”의 미덕을 내팽개친 채 독선과 아집으로 국정을 운영해온 게 누구인가. 그런데도 그가 “개방적인 토론과 합리적인 대화”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으니 어이가 없다.
이 대통령은 6월 민주항쟁 기념일을 “사회 통합과 단합을 이루는 기제”로 삼자며, “성숙한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대통령인 저도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의 잘못된 현실인식과 처방 앞에서 이런 다짐은 공허하기만 하다. 곳곳에서 봇물처럼 터져나오는 아우성과 신음에 귀를 틀어막고 시민의 광장마저 봉쇄하는 것이 노력의 실체인지, 또 법과 질서를 앞세워 반대 목소리를 억누르기만 하면 사회 통합이 이뤄질 것으로 생각하는지 묻고 싶을 뿐이다.
이 대통령이 진정으로 6월항쟁의 숭고한 뜻을 계승 발전시킬 생각이라면 편견과 독선의 동굴에서 벗어나야 한다. 말로만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는 우리 국민들의 강한 의지”를 칭송할 게 아니라, 진정으로 국민을 믿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활짝 열어야 한다. 그런 인식의 대전환이 없는 한 이 대통령도, 이 나라도 함께 불행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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