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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6.15 20:28 수정 : 2009.06.15 20:28

성직자 수천명이 시국선언에 동참했다. 목숨보다 신앙과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이들이다. 성·속의 경계에서 고민이 많았겠지만, 교수·변호사·대학생은 물론 심지어 고교생까지 나서서 시국을 걱정하는 상황이었으니 나서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제 정권은 귀가 있고 눈이 있다면 바로 보고 바로 들어야 한다.

물론 주장하는 바가 같더라도 종교인마저 정치적 행동에 나서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성직자는 종교의 차이, 선과 악, 옳고 그름을 떠나 뭇 생명의 평화와 안식을 추구하는 것을 본령으로 삼는 까닭이다. 그러나 현실은 하안거 결제철임에도 승려 1400여명이, 그리고 전체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1100여명의 신부가 시국선언에 나섰다. 며칠 뒤엔 개신교 쪽에서 목회자 1000인 선언이 뒤따를 것이라고 한다. 숫자만으로 보면 6월항쟁 때의 두 배에 가깝다. 오늘의 사태가 얼마나 위중한 상태인지 잘 보여주는 수치다.

이들을 불러낸 것은 다름 아닌 이명박 대통령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때 드러난 500만명의 조문 인파와 전국 곳곳의 분향소를 지키거나 마음속으로 영면을 빌었던 수많은 국민들의 요구는 소박했다. 민주주의를 더는 후퇴시키지 말고, 돈보다 생명을 존중하며, 부자보다는 중산층 서민을 위해 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정권은 아예 눈을 감고 귀를 닫았다. 오히려 시국선언 교수의 수가 전체의 10분의 1이라느니, 조문하지 않은 사람이 더 많다느니 따위의 말장난으로 빈정거릴 뿐이었다. 그러니 어찌 종교인이라고 성·속의 경계 밖에 머물 수 있을까.

이명박 대통령은 어제 라디오 연설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그는 민심이 이념과 지역으로 갈라져 있다느니, 정쟁의 정치문화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느니 주장했다. 자신과 정부의 잘못으로 말미암아 발생한 지금의 사태를 이념, 지역, 혹은 정쟁으로 돌리려 한 것이다.

이번 종교인의 고언이 마지막 시국선언이 되길 바란다. 그러자면 이 정권은 크게 회심하고 크게 거듭나야 한다. 종교인들의 요구는 좀더 근본적이다. 수용되지 않을 경우 행동 또한 근본적인 형태를 띨 것이다. 지금처럼 이념, 지역, 정쟁 따위의 말장난으로 색깔론과 지역감정을 부활시켜 위기를 모면하려 한다면, 그야말로 근본적인 사태에 직면할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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