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설] 6·15 선언 짓밟고 무얼 얻잔 말인가 |
어제로 6·15 공동선언이 나온 지 꼭 9년이 됐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의 한반도 상황은 너무 다르다. 9년 전엔 선언 발표와 함께 화해와 평화의 기운이 한반도를 덮었으나, 지금은 ‘전쟁’이란 검은 먹구름이 한반도 상공을 맴돌고 있다. 남북 어느 쪽도 이런 상황이 오게 만든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지만, 그 첫 시발점이 이명박 정부의 6·15 선언 무시 정책에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특히 이산가족 상봉이 1년5개월째 중단되고, 개성공단이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 데는 정부의 6·15 무시 정책 탓이 크다.
그럼에도 정부는 이제까지 적어도 말로는 6·15 선언을 무시하는 자세를 취하진 않았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7월11일 국회 개원연설에서 “7·4 공동선언, 남북 기본합의서, 비핵화 공동선언, 6·15 공동선언, 10·4 정상선언을 어떻게 이행해 나갈 것인지 협의할 용의가 있다”고 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도 공식·비공식 자리에서 “6·15를 포함한 남북 합의를 존중하겠다”는 말을 되풀이한다. 유엔 총회에서까지 만장일치의 지지를 받은 선언을 앞장서 깨는 데 대한 부담감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최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부 비판 발언을 계기로, 정부·여당의 자세가 ‘노골적인 6·15 선언 지우기’로 바뀌었다. 지난해 열린 김대중평화센터 주최의 6·15 선언 기념식엔 통일부 장관이 참석했으나, 올해는 요청을 받고도 나오지 않았다. 더 나아가 한나라당은 아예 김 전 대통령의 발언 이후 6·15를 부정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박희태 대표는 “6·15 선언이 있고 난 뒤 좌파 정권이 집권했고 그 얼마 뒤 북핵 실험을 했다”고 북핵 실험의 원인이 6·15 선언에 있는 것처럼 주장했고, 친이명박계의 공성진 최고위원은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욕구와 김정일의 핵무장 야욕이 빚어낸 합작품이 아니냐”고 막말을 했다. 한 정치인이 미워서 일시적으로 흥분한 것으로 보기엔 너무 난폭하고 위험한 언사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정옥근 해군참모총장은 어제 서해교전 10돌 기념식에서 “‘적이 우리의 손끝 하나를 건드리면 적의 손목을 자르겠다’는 각오로 싸워 이기라”고 말했다고 한다. 브레이크가 파열된 폭주 기관차를 보는 듯해 아찔하기만 하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