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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국정원의 야비한 시민단체 탄압 |
국가정보원이 불법적인 민간사찰을 하고 있다는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의 주장이 파문을 빚고 있다. 그는 <위클리 경향>과의 인터뷰 등에서 “국정원이 시민단체와 관계 맺은 기업의 임원들까지 조사해 개별적으로 연락해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주고 있다”며 국정원 개입설을 공식적으로 제기했다. 현 정권에 비우호적인 시민·사회단체 등이 당국의 간섭으로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이야기는 이미 오래전부터 파다했다. 박 상임이사는 이 문제를 처음으로 공론화했을 뿐이다.
박 이사는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시민운동가다. 그가 그동안 보여준 성실하고도 양심적인 행보는 많은 사람들의 신뢰를 받기에 모자람이 없다. 그의 사람됨이나 시민운동에서 차지하는 비중으로 볼 때 이번 발언은 그냥 허술하게 나온 게 아니라고 봐야 한다. 그가 국정원 개입의 구체적 사례로 제시한 희망제작소의 사업 중단 건만 해도 그렇다. 하나은행 등 함께 사업을 하기로 약속했던 기관들이 갑자기 발을 뺀 것은 누가 봐도 ‘보이지 않는 힘’의 작용 때문임이 분명하다. 국정원 쪽은 “아무런 근거 없는 주장”이라며 펄쩍 뛰지만, 국정원의 그동안 행태에 비춰봐도 선뜻 믿음이 가지 않는다.
새 정부 출범 이후 국정원은 과거 권위주의 시대로 역주행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민주화 이후 중립화·탈정치화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활동 범위를 확대해 여기저기를 기웃거리고 간섭하려 했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인 원세훈 원장 취임 이후 국정원의 ‘정권보위기구화’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원 원장은 국회 인사청문회 당시부터 공공연히 정치정보 수집을 하겠다는 소신을 밝혔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아직도 정권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정권에서 눈만 찡긋해도 무슨 의미인지를 알고 따르는 게 기업 생리이니, 시민단체 목조르기는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울 것이다.
국정원에 엄중히 경고하고자 한다. 군사독재 시절에도 찾아보기 힘든 야비한 시민단체 탄압 행위를 당장 중단하기 바란다. ‘증거가 있으면 대보라’는 식으로 빠져나갈 일이 아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해서 될 일도 아니다. 청와대도 시치미를 떼고 ‘모르쇠’로 일관하려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이번 사태의 궁극적 책임이 청와대에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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